새하얀 필드 위 시커먼 차별 삐죽
▲ 아칸소 주지사 시절 백인 전용 클럽을 찾았다가 공개 사과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왼쪽). | ||
먼 옛날 노예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21세기 바로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물론 캐디들 중에는 흑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백인이나 히스패닉계 출신의 캐디도 많다. 문제는 이런 회원제 클럽에 골프를 치러 오는 손님들 가운데 흑인이 없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백인 전용 클럽’이란 이야기다. 아직도 미국에는 이처럼 골프를 백인들의 전유물로 여기면서 철저하게 배타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클럽들이 군데군데 있다.
‘포레스트 레이크 클럽’ 역시 아직도 백인들만 가입할 수 있는 드문 곳 중에 하나다. 이곳이 최근 다시금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얼마 전 차기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직에 출사표를 던진 케이튼 도슨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공화당 의장 때문이다. 불과 두 달 전까지 그 역시 이곳의 ‘백인 회원’이었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12년 동안 ‘포레스트 레이크 클럽’의 회원이었던 도슨이 갑자기 클럽에서 탈퇴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그는 “나는 12년 동안 오히려 ‘백인 전용’이라는 부당한 클럽의 규칙을 뜯어 고치기 위해서 노력해온 장본인이었다. 클럽 이사진에게 유색인종을 받도록 회칙을 수정해달라는 서한까지 직접 써서 보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런 제스처가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공화당 의원회 회의가 열리기 불과 11일 전에 부랴부랴 탈퇴한 것이 어째 미심쩍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그가 12년 동안 구체적으로 무슨 노력을 해왔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백인 전용’ 클럽은 어떤 곳일까. 8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포레스트 레이크 클럽’의 경우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10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 가운데 하나다. 지역 신문인 <더 스테이트>의 창업주를 비롯해 컬럼비아에 거주하는 파워 엘리트들 대다수가 이곳의 회원이다.
▲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백인 전용 골프장 ‘포레스트 레이크 클럽’. | ||
물론 이렇게 피부색에 따라 회원을 차별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고, 또 위헌이다. 대다수의 컨트리 클럽이 “우리는 절대로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고객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회원 명단을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운영상태는 파악할 수 없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역시 아칸소 주지사 시절 ‘백인 전용’ 클럽을 찾았다가 공개 사과하는 해프닝을 벌인 적이 있었다. 당시 리틀록에 있던 ‘백인 전용’ 클럽에서 라운딩을 즐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클린턴은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래도 지난 20년 동안 미국 내 ‘프라이빗 클럽’들은 자의건 타의건 유색인종에게 꾸준히 문을 개방해왔다. 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노골적으로 흑인을 배척하는 클럽들이 많았던 데 비해 현재는 사정이 많이 좋아진 편이다. 가령 콜럼비아의 ‘스프링 밸리 컨트리 클럽’의 경우, 80년대 후반 IBM에 근무하는 한 흑인 중견 간부가 이곳에 입회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을 폭로한 후부터 점차 흑인 회원들을 받기 시작했다.
반면 흑인들에게 개방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흑인 회원들을 찾아볼 수 없는 곳도 많다. 가입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간혹 흑인들 스스로가 입회를 꺼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우선 지나치게 비싼 회원권 가격이 문제다.
이밖에도 어차피 끼리끼리 아는 사람들이 회원으로 가입한다는 점도 흑인들이 입회를 꺼리는 이유 중에 하나다. 가입한다고 해도 어차피 그 안에서는 차별 대우를 받고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돈 많은 흑인들 가운데에는 “그 비싼 돈 내고 눈치까지 볼 바엔 차라리 우리끼리 논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