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사생활 무덤에서 ‘삐죽’
▲ 양갈래 스타일로 유명한 생전의 니나 왕. 로이터/뉴시스 | ||
지난해 난소암으로 사망한 아시아 최고의 여성 갑부인 ‘차이나캠’ 그룹의 전 회장 니나 왕(69)이 무덤에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을 것 같다. 그녀의 막대한 유산을 둘러싸고 유가족들과 자칭 애인이었다고 주장하는 한 풍수 전문가 간에 피 튀기는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생전에 유언장을 작성해 놓긴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진짜’라고 주장하는 유언장이 두 장이나 발견된 것이다. 한 장은 그녀의 시부모와 ‘차이나캠 자선기금’에 전 재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이며, 다른 한 장은 그녀의 전속 풍수가이자 부동산 투자가인 토니 찬(48)에게 전 재산을 남긴다는 내용이다. 전혀 상반된 내용이기에 현재 유언장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태.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1년이 지나도록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속 전쟁’은 최근 그녀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공개되면서 갈수록 점입가경이 되어 가고 있다.
<포브스>에 의하면 사망 당시 왕이 남긴 유산은 순자산 42억 달러(약 4조 원)를 포함, 총 120억 달러(약 17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액수가 워낙 어마어마하다 보니 분쟁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왕의 시부모를 비롯한 유가족들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유언장은 지난 2002년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두 명의 입회인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어로 작성되었다. 이 유언장에 따르면 수혜자는 시부모와 ‘차이나캠 자선기금’이며, 일부는 중국판 노벨 평화상을 만드는 데 사용되길 희망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시부모들은 지난해 니나 왕의 장례식이 끝난 바로 다음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했다. 갑자기 한 남성이 나타나서는 “진짜 유언장은 내가 갖고 있다”라며 폭탄 선언을 한 것이다.
토니 찬이라는 남성이 갖고 있는 영어로 쓰여진 유언장은 지난 2006년 10월에 작성된 것으로써 찬을 유일한 상속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유언장에서 왕은 “찬이 바람직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내 재산을 관리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적었다.
사정이 이렇자 곧 양측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왕의 시부모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면서 찬의 유언장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했고, 찬은 “내가 갖고 있는 유언장이 나중에 작성됐으므로 첫 번째 것은 무효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얼마 전 불거졌다. 시부모 측이 “찬의 유언장은 며느리가 사기꾼인 찬에게 속아서 작성한 것”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평소 미신을 믿길 좋아했던 왕에게 풍수가였던 찬이 “나에게 전 재산을 물려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하면 평생 죽지 않거나 적어도 오래 살 수 있다”고 속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부모들은 이 유언장이야말로 무효라면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 니나 왕과 토니 찬이 함께 찍은 사진. | ||
찬의 변호인은 이에 대한 증거로써 얼마 전 열렸던 예비 심리에서 사진 한 장을 제시했다. 1992년 왕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다. 우선 남녀가 이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웬만한 사이가 아니고선 힘든 일 아니겠냐는 것이 변호인의 설명이었다. 다정해 보이는 이 사진을 본 사진사들 역시 “이런 사진은 중국에서는 보통 결혼 사진으로 많이 찍는다”고 말했다.
찬이 처음 왕을 알게 된 것은 자신의 고객이기도 했던 홍콩의 한 국회의원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이 국회의원은 당시 납치된 후 행방이 묘연한 남편 때문에 시름에 잠겨 있는 왕에게 “남편이 살아 돌아오는 데 아마 풍수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찬을 만났고, 찬은 그녀에게 “아직 남편은 살아 있으니 염려 마라. 기도만 열심히 드리면 된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가까워진 둘은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종종 함께 절에 찾아가 남편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부동산 사업가들이 그렇듯 왕도 생전에 풍수에 아주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찬이 이런 점을 악용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그의 진의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사치를 부렸던 그의 생활을 꼬집고 있다. 왕을 만난 후부터 그가 갑자기 마치 백만장자라도 된 양 돈을 물쓰듯 쓰고 다녔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2년 동안 홍콩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에 네 채의 부동산을 사들였으며, 여러 대의 수입 차도 구입했다. 현재 그가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총 가격은 약 5000만 홍콩달러(약 9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찬의 변호인은 “찬의 진짜 직업은 사실 풍수가가 아니다. 그의 본업은 부동산 투자가며, 풍수는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줄 정도로 취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왕만큼은 아니지만 그 역시 홍콩에서 나름 자수성가한 성공한 사업가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캐나다에서 의과 대학을 졸업한 후 홍콩으로 돌아와서 부동산 투자가로 변신해서 성공을 거둔 인물로서 그동안 정치인들을 비롯한 홍콩의 유명인사들의 풍수를 봐주면서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현재 슬하에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지만 부인이 누구인지, 또 언제 이혼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찌 됐든 죽기 직전까지 남편의 재산을 둘러싸고 시아버지와 8년 동안 지긋지긋한 법정 싸움을 벌였던 왕은 결국 죽은 후에도 이렇게 전쟁을 치러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상속인을 결정하는 법원의 심리는 내년에 열릴 예정이며, 홍콩 언론들은 아직까지 과연 누가 ‘행운의 주인공’이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