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긋할 때마다 ‘어록’이 펑펑
▲ 일본 굴지의 재벌가문 출신 아소 총리는 거리낌 없는 돈 자랑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 ||
요즘 일본 언론들이 아소 총리를 부르는 표현들이다. 이 중 호의적으로 해석할 만한 표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새로운 총리가 취임할 때마다 일본 언론과 대중들의 시선이 점점 더 냉정해지고 있다. 아베 전 총리와 후쿠다 전 총리가 무책임하게 물러나는 모습에 실망한 일본 국민들이 “이번에는 얼마나 가나 보자”라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아소 총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일본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면 아소 총리를 조롱하는 듯한 기사가 유난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소 총리의 잦은 말실수다. 가끔 틀린 표현을 사용하는 정도라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아소 총리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부시즘’과 견주어도 지지 않을 만큼 많은 말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중일 청소년 우호 교류 이벤트에 참가했을 때는 “1년 동안 이만큼 ‘번잡(煩雜)하게’ 양국의 총리가 왕래했던 것은 중일관계 역사상 예가 없었다”는 발언을 해서 참가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가 읽고 있는 원고에는 사실 ‘빈번(頻繁)하게’라고 적혀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는 ‘소신표명연설’을 ‘소득표명연설’이라고 잘못 말해 “또 돈 자랑을 하는 것인가”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아소 총리 본인은 이런 사실을 지적 받아도 “단순한 실수거나 착각”이라고 가볍게 넘기고 있다. 그러나 한 나라를 대표하는 총리의 말실수는 자칫 국제적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는 데다가 국가의 위신과도 관계된 일인 만큼 아소 총리의 ‘무식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소 총리가 유명한 만화광이라는 사실도 위의 이미지를 굳히는 데 일조했다. 만화를 즐기는 것 자체는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지만 일국의 총리가 읽는 책이 오로지 만화책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얼마 전에는 “아무리 바빠도 <빅 코믹(일본의 유명 만화 잡지)>은 꼭 읽는다”는 발언을 했다가 “그게 자랑인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 왼쪽부터 아소 총리, 부시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 ||
지난 11월 초 아소 총리는 대학생들과 선술집에서 함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한 대학생이 아직도 만화를 읽는지 물어보자 “열심히 읽고 있다. 읽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대답해 변함없는 만화 사랑을 과시했다. 비슷한 시기에 도쿄의 한 상점가를 방문했을 때는 “만화를 읽고 웃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건강의 척도”라는 나름의 건강 지론을 펼치기도 했다.
한편 일본 굴지의 재벌가문 출신인 아소 총리의 거리낌 없는 ‘돈 자랑’은 가뜩이나 경제 불황으로 허덕이는 일본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그의 유명한 ‘돈 자랑 어록’ 중에는 “내가 부자라서 사람들이 날 싫어한다” “돈은 질릴 만큼 있다”는 말 등이 있다. 얼마 전에는 아소 총리가 매일같이 고급 요정이나 최고급 호텔의 바를 드나들며 돈을 펑펑 쓴다는 기사에 대해 “호텔이 뭐가 비싸다는 건가”라며 버럭 화를 내서 ‘부르주아 총리’의 면모를 다시금 과시했다.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일까. 얼마 전부터 아소 총리는 도쿄의 상점가를 시찰하며 솜사탕을 사먹거나 지방의 수산시장에서 상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서민적’인 모습을 적극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노력은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미 굳어진 이미지 때문인지 한 주간지에 ‘부자 총리의 서민 놀이’라는 짤막한 기사만 실렸을 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선술집에서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것도 그런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이었지만, 아소 총리는 당초 한 시간으로 예정되어 있던 일정을 채우지도 못하고 30분 만에 자리를 뜬 후 곧바로 고급 호텔로 직행했다.
정치가답지 않은 솔직함과 거침없는 발언으로 침체된 자민당의 ‘좀비 내각’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인물로 등장한 아소 총리는 취임 두 달여 만에 역대의 어느 총리보다도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