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팀 창단도 바라…코치 “시험공부 많이 해 빨리 시험 보고 싶은 기분”
설원 위를 활주하는 이상호. 연합뉴스
[일요신문] 강원도 정선의 고랭지 배추밭은 겨울이면 눈이 쌓여 썰매장으로 운영됐다. 눈썰매를 즐기러 갔던 소년은 그곳에서 우연히 스노보드를 처음 접하게 됐다. 보드에 빠져든 소년은 어느덧 20대 청년이 돼 세계 제패를 꿈꾸고 있다.
대한민국 스노보드 기대주 ‘배추보이’ 이상호의 이야기다. 이상호는 눈앞으로 다가온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종목에 나설 국가대표 선수다. 메달 획득 유력 후보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공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올림픽 성적 및 기대 선수 현황’ 자료에서도 기대주로 거론된 바 있다. 세계 최고를 가리는 올림픽 메달 시상대에 오르기를 꿈꾸는 이상호의 야심찬 도전기를 ‘일요신문’이 들어봤다. 유럽에서 전지훈련 중인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16일 전화로 진행됐다.
#‘배추밭 소년’에서 ‘올림픽 기대주’로
잘 알려져 있듯 그의 별명은 ‘배추보이’다. 스노보드와 배추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그는 배추밭에서 보드를 처음 접했다.
“어릴 때 썰매를 타는 것을 좋아해서 겨울이면 아버지께서 종종 나를 동생과 함께 썰매장에 데려가 주셨다. 마침 거기에서 스노보드 강습이 열리기도 했다. 호기심이 생겼고 실제 강습을 받았다. 그렇게 스노보드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난해 2월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차지하고 귀국현장에서 배추를 선물받은 이상호. 연합뉴스
겨울이 오면 썰매 대신 보드를 즐기게 된 이상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회에 나서기 시작했다.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성장하는 동안 고향인 강원도는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게 됐다. 이상호는 고향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가할 수 있는 국가대표가 됐다.
#대한민국 알파인 스노보드 개척자
이상호가 가는 길이 곧 한국 스노보드의 길이 됐다. 그는 2017년 2월 열린 삿포로 동계아시안 게임에서 2관왕에 올랐다. 대한민국 스노보드 역사상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이었다. 이어 3월에는 터키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스노보드 알파인 평행대회전에서 2위에 올랐다. 그는 올림픽을 1년 앞둔 시점에 세계최고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올랐다.
국내에서 올림픽 메달 유력 주자로 꼽히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생애 첫 올림픽을 앞두고 부담감을 느낄 법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감사함’이었다. “그런 기대도 많은 분들이 주시는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많은 응원을 해주신다는 의미 아니겠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훈련중인 이상호. 사진=대한스키협회
가장 큰 관건은 부상없이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는 “대회까지 남은 날짜와 상관없이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평온하게 훈련하고 있다. 특별한 준비는 없다”고 말했다. 해온 대로만 한다면 된다는 자신감이 충분했다. 그를 지도하는 이상헌 국가대표 코치도 지난해 한 행사에서 “시험공부를 많이 해놔 빨리 시험을 보고 싶은 기분”이라고 전한 바 있다.
스노보드 알파인 평행대회전은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린다. 비록 그가 세계 1위는 아니지만 컨디션 관리만 잘된다면 토너먼트 특성상 입상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 스스로도 금메달이 목표다. 이상호는 “평창에서 금메달을 꼭 따고 싶다”며 “알파인 스노보드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같은 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책임감도 보였다.
이상호는 오는 2월 현재 재학 중인 한국체육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보통의 학생들은 사회로 나아갈 시점이지만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상호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그는 “아직 스노보드 종목은 실업팀이 없다. 개인 스폰서는 있지만 팀이 없기 때문에 이전과 비슷하게 지낼 것 같다. 졸업은 하지만 학교와 선수촌을 오가며 훈련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업팀이 창단했으면 하는 바람도 드러냈다. 그러기 위해선 이번 올림픽에서 성적이 더욱 중요하다.
#현재 이상호를 만든 ‘가족의 힘’
이상호는 그가 처음 스노보드를 접했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단란한 가정 속에서 자라났다. 부모님과 남동생 이외에도 친척들과도 자주 교류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선에 부모님이 살고 있어 서울에 지낼 곳이 없는 그는 기숙사에서 나올 때면 서울 공릉동에 있는 이모 댁을 찾는다.
스노보드는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종목이기에 때로는 ‘금수저’라는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가정 속에서 자라났다. 그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그렇듯 아버지의 헌신이 있었다.
이상호와 그의 동생 유도선수 이상준. 사진=이상호 인스타그램
그의 남동생 이상준도 운동선수다. 유도선수 출신 보안요원들로부터 유도를 배우다 두각을 드러냈다. 정선 지역에서는 인근의 강원랜드 보안요원들이 사회적 활동으로 지역 학생들에게 유도를 가르치곤 했다. 이상준은 지난해 전국체전 남고부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한체대 입학을 앞두고 있다. 형제가 동문이 되는 것이다.
동문이자 운동선수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상호-이상준 형제는 남다른 우애를 자랑한다. 형 이상호는 대회 시즌인 겨울 내내 해외에서 주로 생활을 한다. 비시즌에는 국내에서 동생과 함께 체력훈련을 하기도 한다. 이상호는 가족에 대해 “어머니 아버지의 도움 없이는 지금 스노보드 선수 이상호도 없다.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다. 동생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이외에도 도움을 준 친척들에게도 감사함을 표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배추보이’ 이상호의 어린 시절은…“엉뚱하면서도 씩씩한 소년” 스노보드 불모지에서 세계 톱랭커로 성장한 이상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그의 성장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외삼촌 김원하 씨로부터 한 에피소드를 들어봤다. 이상호는 보통의 소년들과는 다르게 조금은 엉뚱한 면이 있었다. 외삼촌 김 씨는 “보통 어린이들이 경찰서나 관공서 같은 곳을 혼자서 들어가기 꺼려하지 않나. 특히나 강원도 아이들은 더 쑥스럼을 타기도 한다”며 “그런데 상호는 어린 시절 학교에 갔다가 혼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목이 말라서 그런데 물 좀 마실게요’라며 경찰서에 불쑥 찾아 들어가곤 했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엉뚱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활발하고 씩씩한 면이 지금의 이상호가 완성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며 웃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