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과 같은 절차를 밟는 국내 전문대…알짜배기 학과 키워야
- 영국 노르위치 시립대학서 따온 ‘학습상점’
[대구=일요신문] 안대식·남경원 기자 = 거침없고 냉철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움직인다. 김재현(42) 호산대학교 부총장을 대했을 때의 첫 느낌이다. 학교에 대한 자랑거리를 늘어놓기보단 현실적인 문제를 끄집어내고 그에 대한 대책과 개선책을 말한다. 보수적인 대구·경북에서, 특히나 보수적인 교육계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힘든 분석력도 돋보인다.
김재현 호산대학교 부총장
“한국교육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배워야 한다. 일본의 교육을 보면 우리나라 교육의 10년 이후를 알 수 있다.” 김 부총장은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The Matsushita Institute of Government and Management)’과 ‘다케가와시의 공민관’을 예로 들었다.
마쓰시타 정경숙은 현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에 의해 설립된 일본의 고위관료를 배출시키는 학원이다. 이른바 재벌이 연수원을 만들어서 최고의 교육을 시켜 기업에 맞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고위관료가 되기 위해 행정고시 등 시험을 쳐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일본의 가케가와시는 평생학습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지방촌인 가케가와시에 있는 공민관은 한국으로 치면 시골의 복지관이다. 가케가와시의 공민관에서는 오후 3시가 되면 80~90대 노인들이 책을 펴고 공부를 하며 다도와 서예를 배우는 게 일상이다. 국내의 주된 평생교육인 음악 또는 요가 등과는 차원이 다른 교육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김 부총장이 평생직업교육본부장으로 활동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김 부총장은 국내 대학 최초로 ‘학습상점(Learning Shop)’을 열고 평생교육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교육공헌 대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호산대의 평생직업교육대학 비학위과정 이수자는 1만2861명으로 전국 최고의 실적을 자랑한다. 김 부총장은 여기에 대해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사실 대학 전체로 본다면 학생 인구가 줄어드니 정원을 감축할 수밖에 없었다. 정원을 줄이되 비학위를 늘리자고 시작한 게 ‘학습상점’이다. 주변에 정보나 프로그램을 몰라 배우지 못하는 다문화가정이 많은 것을 주목하고 평생교육사들을 통해 상담을 했다. 대부분 취업에 초점을 둔 분들이라 이렇게 하면 자격증을 따고 취업이 가능하다고 안내만 했을 뿐이다.”
국내 최초로 개설한 ‘학습버스(Learning Bus)’에 대한 것도 담담히 털어놨다. 이것은 지역주민이 요청하면 학습버스에 필요한 기자재 싣고 마을회관에 가서 현장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설날 전에 인근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다. 그냥 학습버스에 프라이팬과 버너 등을 싣고 차례상을 어떻게 차리는지 알려줬다. 또 마을회관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모아서 간호학과 교수님들이 심폐소생술을 가르쳐줬다. 사실상 이들에게 실제적으로 필요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본다.”
학습상점 등은 영국의 노르위치 시립대학에서 따온 것이다. 소외계층에 대한 평생교육을 지원하고 프로그램을 강화해 능력 중심의 사회 실현과 성인학습자들의 취업률을 높이자는 것이다.
경영학과를 전공했던 김 부총장이 교육계로 뛰어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는 한 은사가 있다. 우리나라 HRD(Human Resource Management) 1세대인 교수님의 권유로 김 부총장은 ‘경영’과 ‘교육’을 접목하게 된다. 이 교수님과 함께 2차례 일본으로 출장 가면서 평생직업교육에 대한 새로운 안목도 키우게 됐다.
“사실 경영학과를 전공한 탓인지 답이 없는 건 너무 답답하다. 복지는 사실상 답이 있는 게 아니다. 전문가들도 여기에 대해 자기 측면의 생각만 내세울뿐 구체적인 대책은 잘 못 세운다. (이러한 기질) 덕분에 학교 정책을 세울 때 시간 낭비를 안하는 편이다.” 이 부총장의 거침없고 냉철한 부분이 바로 이러한 점이다.
호산대학교 전경
경영과 교육을 접목한 방식은 다음에도 찾아볼 수 있다.
“지역인재는 그 지역에 취업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사실 호산대(경산)에 오는 학생들의 60%는 대구 출신이다. 나머지 20%가 지역 출신인 경산이고, 나머지 20%는 포항과 경주, 울산이다. 그래서 대구 관공서와 경산시청, 지역 공단과 협약부터 맺고 현실적으로 직결되는 취업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 현재 400여 개의 중소기업을 두고 있으며 졸업생 대부분은 이곳으로 취업하게 된다.”
이른바 ‘지인지취(地人地就)’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단계에서부터 학과별로 기업 전문가를 초빙해 기업 현장과 부합하는 교과목인지 검토과정을 거친다. 학생들의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방학때에는 현장 실습을 보내보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졸업 후 취업을 하게 된다. 애당초 졸업과 취업이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것.
“문재인 대통령이 출범하면서 나온 ‘기회는 공평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말이 전문대학교에서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냉철하지만 가슴이 따뜻한 ‘교육경영자’라는 평가가 여기서 나온다. 이 부총장은 한 전문대 학생들이 일부러 버스정류장을 한 코스 더 지나서 내린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전문대 다니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사회적 낙인’의 효과가 크다.
“이제 막 19, 20살 된 학생들이 전문대에 오자마자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 말 그대로 전문가를 양성하는 대학인데 마치 공부를 못해서 기술을 배우러 간다는 식으로 여긴다. 특별한 어드밴티지(advantage)를 달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똑같은 선상에서 출발하는 공정한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호산대를 짊어진 김 부총장의 교육철학이기도 하다.
김 부총장은 호산대가 전문대학으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보건’과 ‘복지’를 강조한 웰리스(Wellness)를 추구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사례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일본이 10년 전 겪었던 전문대학의 붕괴가 국내에도 오고 있다고 본다. 10년 전 일본의 1000명의 학생을 수용한 전문대학이 300명으로 규모가 줄었다. 결국 학생 수가 줄게 되면 대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특성화밖에 없다고 본다. 규모를 줄이더라도 알짜배기 학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현재 대구와 경북은 물론, 부산과 경남에도 전문대는 보건계열이 단연코 1등이다. 보건계열 중에서도 의료행정과 의료관광을 주목하고 있다. 대구시가 메디시티를 미는 경향도 있지만 실제로 중국에는 의료관광객의 수요가 높다. 시와 병원, 중국과의 브리지(bridge) 역할만 잘 되면 뷰티쪽으로 주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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