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마다 성스러운 이념을 품고/이 세상에 사는 진리 찾는 이 길을” 운운하는 서울대학교 교가는 서울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제대로 부를 줄 모르는 `‘불행한 교가’다. 사립대학의 교가는 운동경기 때도 부르고 졸업한 지 십수년이 지난 동창들 모임에서까지 열창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에 비해 서울대 교가는 1년에 한두 번 입학식과 졸업식에서 그것도 부설고등학교의 브라스 밴드에 맞춰 입술만 들석이는 립 싱크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교가의 신세가 어찌 되었든 서울대학교는 대학진학을 원하는 모든 학생들이 선망하는 꿈의 궁전이요 우상의 신전이다. 그동안 입신출세한 사람들의 분포로 보거나 교육의 질로 보아도 아직까지는 국내에선 서울대학을 앞지를 만한 종합대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학한 뒤 4년 동안 학교공부를 어떻게 했든 일단 졸업만 하면 남보다 우월한 조건으로 사회생활을 출발할 수가 있다.
그러나 서울대학이 최고의 대학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집안사정’이고 외국의 내로라하는 대학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서울대학은 아직까지는 ‘우물안 개구리’일 뿐이다. 이런 사정은 서울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까지도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서울대학을 개혁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지만 언제나 메아리없는 외침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서울대학을 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서울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몇 해전 어느 소설가는 `<서울대 시지프스>라는 연작소설에서 “3개의 한글 자음 ㄱ, ㅅ, ㄷ을 형상화한 서울대학교 교문은 국립서울대학교의 약자(略字)가 아니라 권력과 섹스와 돈을 상징하는 거대한 신전”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남에겐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개혁엔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서울대학에 대한 비아냥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개혁적인 총장이 들어서서 서울대학을새롭게 뜯어고치려 해도 정부와 손발이 맞지 않으면 그 자리조차 유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서울대학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이끌어가는 대학사무국은 여전히 교육부에서 파견나온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는 데다 교수들이 선출한 총장도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학의 독립성을 주장하더라도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서울대학의 위상이다.게다가 서울대학교 총장은 교수들이 직선으로 뽑은 총장이다. 교수들이 뽑은 총장은 그만큼 힘있는 총장이 될 수 있지만 또한 그에 못지 않은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교수들이 뽑은 총장은 교수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밀어낼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개혁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교수들의 기득권을 건드려야 하는 사태가 왔을 때 과연 교수들이 고분고분 따르겠느냐는 점이다.
만에 하나 기득권박탈에 반발한 교수들이 집단으로 총장실을 점거하거나 연좌농성을 할 경우 그 해결책은 지금까지의 전례로 봐서는 총장이 물러나는 길밖에는 달리 길이 없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정운찬 교수가 서울대학교 새 총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새 총장에 대한 기대 못지 않게 지금까지의 총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개혁만 외치다가 중도하차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서울대학이 개혁되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부에 포진하고 있는 관료사회의 두꺼운 벽을 넘어야 하고 교수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기득권의 철옹성을 깨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새 총장이 과연 교수사회의 기득권까지 건드릴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학의 개혁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어떤 총장도 자신을 총장으로 뽑아준 교수사회의 기득권까지 건드리는 모험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험에서이다. 그래서 “서울대학은 과연 스스로 개혁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아무도 선뜻 ‘그렇다’고 대답을 못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광훈[언 론 인]
온라인 기사 ( 2024.11.22 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