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그러나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 후보로 결정되었다는 발표를 보면서 가슴 한 켠에는 그동안 정몽준 후보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던 일단의 연예인들이 과연 노 후보 지지로 쉽게 돌아서겠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명계남 문성근 권해효 방은진 이창동씨 등 오래 전부터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던 연예인들이야 당연히 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더욱 열심히 뛸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몽준 후보를 지지했던 가수 김흥국을 비롯하여 강부자 윤석화 김상희 노영심 최진실 손지창 백일섭씨 등등이 후보가 단일화되었다고 해서 쉽게 노무현 후보 지지로 돌아서겠느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정몽준 후보를 지지했던 연예인들은 대부분 정 후보와 오랫동안 개인적 친분관계를 쌓아왔던 인물들이다. 따라서 후보가 단일화되었다고 해서 그동안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고 도와왔던 연예인들이 하루아침에 노 후보 지지로 쉽게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선거에서 연예인들이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당선을 위해 유세장에 얼굴을 나타내는 것은 군사정권시절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자칫 야당후보를 지지했다간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연예인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당히 밝히고 선거운동에 나설 수 있게 된 것도 정치적 민주화에 따른 새로운 현상이다.
소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1 고수(鼓手) 2 명창(名唱)’이란 말이 있다. 소리하는 명창보다 북으로 장단을 치는 고수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이다. 하기야 아무리 뛰어난 명창이라도 뛰어난 고수가 없으면 그 소리는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법이다. 굳이 무사(武士)와 악사(樂士)의 관계를 끌어대지 않더라도 개선장군의 행진이 돋보이자면 우렁찬 행진곡을 연주하는 군악대가 있어야 하고 명창이 빛을 보자면 명 고수가 있어야 한다.
소설가 홍성원은 오래 전에 쓴 <무사와 악사>라는 소설에서 서로를 돋보이게 해주는 무사와 악사의 관계를 그린 바 있다. “무사가 칼을 차고 지나가면 그 뒤엔 그를 칭송할 악사가 필요한 법이다. 칼이 허리에서 절그럭거려서 무사는 자기 입으로는 자찬(自讚)의 노래를 읊을 수가 없다. 악사는 바로 이런 때를 대비했다가 무사의 눈짓이 날아올 때 재빨리 악기를 꺼내 황홀한 음악을 탄금하는 것이다.
무사님이 작업하실 때 우리 악사는 뒷전에서 잘한다! 옳소! 하고 소리나 쳐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명창과 고수의 관계나 대선후보와 지지 연예인의 관계는 무사와 악사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상하관계도 아니며 고용관계는 더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연예계 사정에 밝은 어느 분은 연예인들이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유형을 친지나 동료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나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앞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위해 ‘눈도장’을 찍으려는 이도 있고 ‘보험용’도 있다고 분석했다.
하기야 그전에도 특정 대선후보의 진영에 들어가서 활동한 공로로 정계진출에 성공한 연예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정계진출을 위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이른바 보험용으로 당선이 유력한 후보의 진영에 얼굴을 비치는 것은 연예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그동안 정계에 진출한 연예인들이 정치인으로 성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직도 우리의 정치풍토는 레이건 같은 정치인을 키울 정도로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무사에겐 무사의 길이 있고 악사에겐 악사의 길이 있듯이 정치인에겐 정치인의 길이 있고 연예인에겐 연예인으로서 가야 할 길이 따로 있다. 연예인의 특정 후보 지지가 유권자로서의 자발적 지지가 아니라 무언가 보상을 노린 지지라면 그것은 연예인 스스로 자기무덤을 파는 일이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