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노무현 당선자는 민주당 내에서도 비주류였고 우리 사회에서도 ‘비주류’로 각인된 사람이었다. 민주당은 위기마다 그를 흔들었고, 우리 사회의 주류는 조직도 없고 돈도 없고 사상까지도 위험(?)한 그를 불안한 인물로 낙인찍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서 희망을 본 것은 무의식적으로 21세기를 읽은 젊은 민심들, ‘개혁성향의 개미군단’들이었다.
미군이 몬 장갑차에 깔려 효순이와 미선이가 참담하게 세상을 떠나고 그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했을 때에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라며 억울한 죽음에 대한 벌을 요구하고 불평등한 SOFA를 개정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를 “위험한 반미”로 치부했었다. 제 국민도 지키지 못하는 국가가 무슨 국가냐고, 우리 국가는 미국이 파견한 총독부냐고 저항하는 이들을 국가의 안보에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고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냉전체제 속에서 숱하게 이용되어온 그런 발상은 먹히지 않았다. 거기에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세계사적인 조류를 접하면서 한반도의 위상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새로운 세대, ‘젊은 민심’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한때 기분으로 그냥 외쳐봤던 공허한 함성이 아니었었다. “대∼한민국”으로 민족적 자부심을 회복한 젊은 민심은 탄력이 있었다. 그 젊은 민심은 “반미는 안된다”고, 효순이 미선이 죽음을 계기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며 불길하게 해석하려 한 그 세력에 대해 따뜻한 촛불시위로 대응하면서 민족국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 젊은 민심이 ‘노무현’을 선택한 것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갈증의 표현이다. 해방 후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감싸왔던 앙시앙레짐의 탈피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앙시앙레짐이었던 수구냉전지역주의를 탈피하고, 탈냉전·탈지역주의·탈맹주정치 그리고 탈줄서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소위 ‘낡은 정치’ 청산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당선자측은 “낡은 정치 청산”을 내세웠고 한나라당은 “부패청산”을 내세웠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부패청산” 구호가 틀리지 않았는데 왜 파급효과가 적었는가? 바로 “부패청산”을 외치는 그들이 ‘부패의 원조’로서의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8·8보선 이후에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은 ‘대세론’을 따라 보따리를 싸는 철새정치인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였다. 세를 불리겠다는 일념으로 노선도 없고 신의도 없고 능력도 없으면서 세상물정에만 밝은 기회주의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이 “부패청산”을 외쳐도 그렇구나, 수긍하기보다는 “부패의 원조”라는 메아리로 돌려줄 수밖에.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지역감정이 남아있는 것은 노무현 당선자의 과제다. 그렇지만 분명히 희망은 있다. 그것은 ‘노무현’이 호남에서 지지를 받은 영남후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노무현’ 자신이 지역주의에 몸을 던져 저항하다 부산에서 몇 번이나 떨어진 경력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남에서도 한나라당 이외의 후보가 당선되고 호남에서도 민주당 이외의 후보가 당선될 수 있기 위해서는 소선거구제를 버리고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교과서적 관점에서 보면 소선거구제나 중대선거구제나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요구의 관점에서 보면 맹주들이 공천권을 가지고 자기지역의 지배권을 행사해온 소선거구제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는 민노당의 권영길 후보의 약진도 주목해야 한다. 사표를 방지하자는 심리가 아니라면 그는 좀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권 후보가 그만큼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우리 사회가 이제 다양한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중대선거구제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무시되어온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