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광화문과 시청 앞을 가득 메웠던 ‘붉은악마’를 비롯한 거국적 응원단은 말할 것도 없고 평소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축구에 빠져들어 그야말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게’ 6월 한 달을 보냈다.
23명의 태극전사를 이끌고 4강신화를 이룩해 낸 히딩크 감독은 6. 25전란에서 나라를 지켜준 맥아더 원수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는가 하면 명예서울시민에 사상초유의 명예국민증에 그리고 몇몇 대학에선 명예박사학위까지 받았으니 ‘명예’가 붙은 자격은 골고루 갖춘 셈이다. 그것으로도 보답이 미흡했던지 자동차회사에서는 고급승용차를 기증했고 유명 골프클럽을 만드는 회사에서는 평생 쓰고도 남을 골프채를 선사하기도 했다.
선수들에게 바치는 찬사도 ‘대~한민국’의 모든 언어를 동원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하기야 지난 50년 동안 월드컵 본선에서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한(恨)을 풀어준 것은 물론 축구계의 비원(悲願)이던 16강에 오르고 그 여세를 몰아 축구강국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깨고 4강에까지 올랐으니 그들에게 베푸는 것이 무엇인들 아까우랴. 태극전사들 하나하나가 전 국민의 우상으로 떠오른 것도 그들이 쟁취한 기적 같은 승리 때문이 아닌가.
한 달 동안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은 끝났지만 그 열기는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그러다보니 이 태극전사들은 월드컵경기가 끝난 뒤에도 승자가 누려야 할 느긋한 휴식과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스포츠 스타들이 그랬던 것처럼 축하모임이다 사인회다 해서 여기저기 불려다니고 방송에 얼굴 비치느라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K-리그에서 뛰느라 국내파 선수들은 단 며칠간의 휴식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식을 줄 모르는 히딩크의 인기와 히딩크를 따라 배우자는 학습열풍도 월드컵열기의 하나이다. 4강신화를 이루어 낸 히딩크감독의 인기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네덜란드의 고향마을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등장할 만큼 열광적이다. 그리고 히딩크의 리더십을 따라 배우자는 열풍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있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학연과 지연을 떠나 오로지 실력만으로 대표선수를 선발하고 훈련시킨 것이 4강신화를 이룩한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대표선수들의 승리를 축하하고 환영하는 모임은 여전히 지연과 학연에 따라 진행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개선장군을 환영한답시고 새로 당선된 도지사와 시장이 선수들을 앞세워 카 퍼레이드에 나서는가 하면 각 대학에서는 이번에 출전했던 ‘자랑스러운 동문’들을 불러다 놓고 모교를 빛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자리를 다투어 마련했다. 지연 학연의 고리를 끊은 히딩크를 따라 배우자던 다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스타에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여온 방송들도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화면에 담느라 바쁘다. 이천수 선수는 3·4위전이 끝나자마자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밥 배달하는 고역을 치러야 했다. 현장의 삶을 생생하게 체험한다는 프로그램에서였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저녁엔 무슨 ‘몰래카메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선수들과 그들 가족의 사생활을 파고드는 일도 여전했다. 오죽했으면 김남일 선수는 “당분간 나를 찾지 말아달라”고 볼멘소리를 했겠는가.
가만있어도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태극전사들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들겠지만 이제는 그들에게도 휴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마라톤의 황영조 선수나 사격의 강초현 선수 경우처럼 그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찬사는 오히려 그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축구선수는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그들을 위하는 길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