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반가웠다. 그날 고려대 이승환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철학계에서는 지난 수년간 하버마스, 아펠, 로티 등 서구에서 내로라하는 철학자들을 거금을 주고 초빙하였다. 머리가 모자라고 지식이 짧은 사람이 훌륭한 분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배우는 자의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외국의 손님을 초청해 놓고, 자기 집안의 세세한 문제에 대해 가르침을 청한다면 이는 망신이다. 하버마스가 방문하였을 때 어떤 학자는 하버마스에게 한국 인권운동의 미래와 전망에 관해서 질문하였고, 하버마스는 그 문제는 당사자인 한국인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아펠이 왔을 때도 그랬고, 기든스가 왔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외국의 학자들을 초청하여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질문하는 일은 마치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우스꽝스럽다. 이는 자기 집의 비 새는 곳을 자기가 찾아내지 못하고 손님에게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이승환 교수의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우리 작가의 생각이 난해하면 알고 싶지 않은 겉멋이고 외국작가의 생각이 난해하면 도달하기 힘든 경지로 치부되는 것, 우리 작가가 동의할 수 있는 생각의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상식이고 외국작가가 동의할 수 있는 생각의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심오함이 되는 것! 그것은 그 만큼 우리가 자신감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내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으면 중심을 잡고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부드럽고 겸손하다. 나보다 잘난 남을 무조건 우러르는 그 태도는 또 나보다 못한 남을 무조건 비하하는 우월감과 연결되지 않나. 어느 분야에서건 우월감도 별로 아름답지 않다. 그것은 그것대로 함정이기도하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 중의 하나가 <맛의 달인>이다. 주인공 지로가 그 분야의 달인들을 누르고 달인 중의 달인이 된 것은 ‘나’ 이외의 타인은 안중에도 없는 오만한 달인들의 함정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매콤한 타이식 비프 샐러드 ‘야망누에’. 쇠고기를 살짝 구운 다음, 채썰은 양파, 슬라이스한 오이, 다진 고추, 코리앤돌잎, 박하잎이 주재료다.
그 복잡미묘한 맛에 취한 지로가 주인에게 묻는다. 일본에서는 맛보기 힘든 향기인데 일본에서 타이요리를 만드는 게 힘들겠다고. “예, 야채 구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일본 야채는 맛이 약해 쓰기가 어렵답니다.” 이렇게 매운 걸 먹으면 머리가 둔해진다고, 타이요리를 비하하는 미식가가 발끈한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일본야채가 맛이 없다니, 개발도상국에서 온 주제에. 야채를 보더라도 외국 것들은 모양도 나쁘고 벌레 먹은 것 투성인데.” 무엇이든 일본이 최고니까 모양 좋고 벌레 없는 일본야채가 최고라고 국력만 믿고 오만해진 사람들에게 지로가 보여준다. 일본야채의 현실을.
1950년 1백g 중에 1백50mg의 비타민C가 들어있었던 일본시금치가 1982년에는 65mg으로 줄고, 8천IU였던 비타민A가 1천7백IU로 줄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농약과 제초제를 다량으로 쓰기 때문이죠.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가, 벌레를 죽이는 농약이 야채에게 무해하겠습니까.” 농약과 제초제로 약해진 야채에 노폐물이 쌓이고 그것이 야채 원래의 맛을 버리는 거란다.
요리를 사랑하는 지로는 요리 앞에서 겸손하다. 사랑은 겸손함으로써 함께 느낄 수 있는 거니까. 달인은 사랑할 수 있는 자, 사랑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사람이다. 사랑이 없으면 달인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