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일남 언론인 | ||
그런 와중에 작다면 작은 문제 몇 가지를 제안하자니 스스로 열적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시기를 놓치면 안될 것 같아 하는 말이니 일단 들어나 보시라. 그대로 둔들 대세에 지장이야 없겠으나 없애면 더욱 좋은 것들이다.
1. 청와대에 들어가면 봉황무늬가 당장 눈에 띌 터이다. 집무실은 물론, 수컷 봉과 암컷 황이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으로 어느덧 굳어 청와대를 수식한다. 바깥에서 거행하는 기념식 연대(演臺)에도 그게 붙어있는 걸 보았다.
정부 수립 직후부터 등장한 것 같지는 않다. 장면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주 나타난 걸로 미루어 제1~제2공화국 어간에 생겼지 싶거늘, 사진 등으로 대할 때마다 ‘임금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성천자(聖天子) 하강의 징조까지 들먹일 건 없다. 민간에서도 상서로운 상상의 새 봉황을 베개에 수놓아 부부의 애정을 표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닭이 천이면 봉이 한 마리 있다’는 속담이 대통령의 이미지와 겹쳐 제왕적 군림을 느끼게 만든다. ‘연작(燕雀)이 어찌 대붕(大鵬)의 뜻을 알랴’고 했던 김종필씨의 말마저 떠올라 국민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비치기도 한다. 고치든가 없앨 수 없을까.
2. 머지 않아 새 장관들의 임명장 수여식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종전대로라면 한 사람씩 대통령 앞으로 나아가, 두 손으로 임명장을 높이 받들고 허리를 깊이 꺾을 것임에 틀림없다. 수십 년 동안 하도 빈번히 겪은 광경이라 이상할 것이 없다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쯤 해서 다른 모양으로 진행하면 어떨까. 일본식 잔재 여부를 떠나 엄숙주의가 지나치다. 절과 악수의 되풀이 대신, 빙 둘러앉아 덕담이라도 나누는 가운데 임명장을 준대서 대통령의 권위가 덧날 리 만무다.
3. 경우는 좀 다르되 대통령이 각계각층 명망가들을 한꺼번에 기십 명씩, 또는 백 단위가 넘도록 불러 회식하는 모임을 또 수없이 보았다. 의도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국수나 비빔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나쁘기야 할까마는 별무소득의 형식에 그치기 쉬웠다. 재임기간 중 돌아다닌 국내외 여행을 마일리지 합산하듯 엮어 자랑한 대통령도 보았던 터에, 연회장에 모인 인사들의 머릿수만으로 자족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청와대까지 가서 기다리는 시간과 복잡한 절차에 미리 진이 빠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개중엔 대통령의 초청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는 이도 없지 않겠으나, 꾸벅꾸벅 절하고 악수 한 번 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여러 모로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다.
4. 김대중 대통령의 언론사 창립기념일 인터뷰는 전에 없던 일이었다. 새로운 스타일이었는데 갈수록 의무적인 회견이 되고 말았다. 골고루 기회를 준다는 뜻에 비해 새로운 정보가 드물고, 타사 행사에 폐쇄적인 언론의 생리가 거들어 안하느니만 못했다.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애쓴 보람도 없이, 이를 악물고 발목잡기에 골몰한 메이저 언론에 줄곧 시달렸다. 사장 편집국장 정치•사회부장을 따로따로 초빙한 사례와 더불어 퍽 소모적이었다. 권력과 언론은 끝끝내 불가근 불가원의 거리를 유지해야 제격인 것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미리 언급한 청와대 생활의 밑그림은 아직 하나밖에 나온 것이 없다. 자동차로 내왕할 정도로 떨어진 비서실을 대통령 집무실 곁으로 옮겨 신속한 의사 소통을 꾀하겠다는 게다. 이 시점에서는 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 산적해 있어, 방금 열거한 사안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랜 관례와 격식에 일일이 손을 대자면 한이 없는 줄도 안다. 그러나 소소한 개혁이 때로는 거대담론 못지 않게 신선한 울림을 주는 수가 있다. 더구나 마음만 먹으면 청와대에 들어서자마자 돈 안들이고 실천이 가능한 일들 아닌가.
청와대 밖에서, 특히 언론이 대통령 주변을 표현하는 말도 적잖이 변했다. 낙점, 윤허, 통치 따위 소리를 예전보다는 덜 쓴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이 노무현을 그냥 노무현으로 부르는 점이다. YS, DJ, JP식 별호를 따르기로는 ‘MH’로 표기할 법도 한데 말이다.
그만큼 당수나 영수로 행세한 세월이 짧은 탓으로 돌리든 말든, 3김시대의 종막과 함께 사라질 서양식 호칭을 다시는 입에 담지말았으면 싶다. 버젓한 성명 삼자를 두고 이 무슨 경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