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만나는 사람마다 꿈속처럼 아득하다. 오늘 만난 사람과 일년 전 만난 사람의 거리가, 차이가 없이 모두 저만치 멀기만 하다. 오늘날의 감기다. 오늘날의 감기는 도시인처럼 표정 없이 다가와서 도시의 먼지군단처럼 집요하고 지독하다.
감기 같은 도시가 싫다. 그러나 어쩔까?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인으로 자리잡은 나는 도시를 떠나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는데. ‘새만금 살리기 토론회’에서 만난 시인 김지하씨의 말이 인상적이다. 새만금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생명’을 모시는 마음을 부활시켜야 한단다.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의 마음으로 진지해지면 여의도 면적의 1백40배나 되는 생명의 갯벌을 폭격 맞은 것처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없는 거라고. 그러나 그것은 긴 싸움이라고, 흥분상태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든 예가 흥분상태로 귀농을 선택한 후배의 얘기였다.
그 남자와 그 가족은 도시가 싫었다. 그래서 산골짜기에 땅을 사 산골로 내려갔다. 저 산을 봐! 저 달 좀 봐!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다고 감탄에 감탄을 하던 식구들이 몇 개월이 지나니까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란다. ‘아이들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가 버렸고 혼자 남은 남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유기농업’에 실패하고 혼자 살고 있다나.
크게 웃었지만 웃고 나니 심각하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나의 그림자였으므로. 언젠가는 이 먼지에 짓눌린 도시를 떠날 거라고, 도시를 떠나 자연과 함께 살 거라고 다짐했던 나. 나는 그 희망으로 감기 같은 도시의 삶을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도시를 떠난다면 그 남자처럼 될 가능성이 제일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얼굴도 모르는 그 남자가 남 같지 않다. 그의 실패에 연민이 든다. 그의 삶이 그렇게 처량하고 고독해진 것은 그의 꿈이 가짜여서가 아니라 현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현실은 ‘현실을 알자’라는 구호로 알아질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닐 터였다.
그런데 왜 나는 나를 먹여 살린 이 도시를 떠나고 싶은가? 한 번도 농사란 걸 지어본 적이 없는 내가 왜 땅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시간만 나면 도시를 떠나 산으로 가는가. 도시처럼 나도 지쳐있기 때문이다.
감기 같은 도시에서 감기에 잘 걸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쾌적하게 바꿔내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일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에 집이 있으면서 개인적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찬성한 것은 행정수도 이전의 핵심이 ‘분권’이라기보다는 ‘분권’을 통한 ‘수도권 비대화 방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울이 비대화될수록 심각해지는 문제는 바로 교통이고 환경이다.
예전에는 ‘서울 근교’라는 개념이 있었다. 근교만 나가도 공기가 다르고 물맛이 다르고 인심이 다르고 따라서 기분이 달랐다. 그러나 이제는! 곳곳에 ‘서울’을 근거지로 한 위성도시들이 생겨 수도권이 경기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모두가 도시여서 근교가 갖는 ‘탈도시’의 느낌이 사라졌다. 요즘에야 뼈저리게 느낀다. 숲은 우리 몸밖의 폐라는 사실을. 산이 헐리고 수천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가면 내 폐에 그만큼 먼지가 쌓여간다는 걸. 그래서 당황스럽다.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과 함께 건설교통부가 공장이나 대학 설립을 엄격하게 제한해온 수도권 규제정책을 완화할 방침이라는 얘기가. 그렇다면 서울에서 행정수도 이전의 실익은 뭘까?
그리고 또 불안하다. ‘분권화’가 또 하나의 서울, 먼지에 짓눌린 도시를 만들까봐. 이제 새로운 행정수도는 ‘생태’가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처럼 교육이나 문화에는 소외되지 않으면서 시냇물이 흐르고 새들이 노래하고 장수하늘소가 날아다니는, ‘숲과 함께 하는 도시’를 꿈꿀 수 없다면 행정수도는 투기꾼들이 날뛰는 탐욕스런 도시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