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그런 이상한 사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나는 까뮈의 <페스트>를 생각했다. “페스트 사태를 선포하고 도시를 폐쇄하라”는 전투적인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그 소설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상황이었다.
오랑의 페스트! 페스트 사태로 도시가 폐쇄된다. 갇힌 도시! 도시 밖의 사람들이 도시 안으로 들어올 수는 있지만 도시 안에서는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나갈 수 없는 그 오염된 도시로 들어온 딱 한 사람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애인이 아니라 오랜 세월 결혼생활을 해온 늙은 의사 카스텔이 그 부인을 찾아간 것뿐이었다. 어쩌면 사랑은 열정 그 이상이 아닐는지.
주인공인 의사 리유는 전염병이라는 엄청난 사태 앞에서 기가 막힌다. 병을 치유해야 하는 의사가 너, 페스트에 걸렸다고 진단만 할 뿐 치료할 수 없다니! 질병을 치유할 수 없는 리유는 안다, 페스트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것은 속수무책의 재앙이었다. 재앙이어서 인간의 손을 넘어서 있다.
까뮈가 말한다. ‘재앙의 존재를 믿지 않는 휴머니스트란 얼마나 답답한가’라고. 재앙은 악몽이 아니라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이었다. 생의 골수로 빼먹고 마침내 해골을 만드는 그 속수무책의 재앙에 대해 리유는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불가항력에 대해 인간은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 페스트가 스스로 지쳐 사그라질 때까지 분명한 패배가 예정되어 있는 왜소한 인간이지만 그래도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단다. “죽기 싫어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볼 수 없어서, 살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 죽어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끝없는 패배가 싸움을 중단시키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질 줄 알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 그 싸움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그 힘은 사랑에서 온다. 리유와 하느님의 사제인 파늘루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이따금 이 도시에서 반항심밖에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고 리유가 말하자 파늘루가 대답한다. “이해합니다. 정말 우리 힘에는 도가 넘치는 일이니 반항심도 생길 만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리유가 반항한다. 내가 아는 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고. 어린애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하는 부조리한 세상이라면 죽어도 거부하겠다고.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거부의 몸짓, 그것이 리유의 사랑이다. 까뮈가 말한다. 사랑을 위해 싸우는 것이지 투쟁을 위한 투쟁은 아니라고. 사랑이 없는 이 세계는 죽은 세계와 다를 바 없다고.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라 우리 존재가 놓여있는 상황이다. 부조리한 전쟁이 부조리하게 일어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냉소의 벽이 두터워지고, 계층과 계층 사이에 불신의 가시덤불이 놓여있는 그 상황이다. 어이하나. 까뮈가 보여주려 애쓴다. 그래도 인간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존재라고. 사랑하는 이가 페스트에 감염되지 않도록 투쟁해야 한다고. 그 투쟁의 힘이 아무리 작다해도 결국 사랑을 위한 투쟁, 사랑을 위한 반항이 인간의 삶인 거라고.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