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어떻게 살아왔기에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백5km,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절을 하고 올라오는 그 긴긴 여정에서, 내내 흐트러짐 없이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며 저렇듯 깨끗하게 빛나는 눈을 가질 수 있을까.
가끔씩, 아주 가끔씩 나는 그들이 절하는 뒤켠에서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들의 뒤를 따르며 나는 내게 묻는다. 저들은 저렇듯 고행인데 나는 어쩌자고 저들을 이렇게 편안하게 느끼는가….
저들이 온몸으로 절을 하며 기원한다. 세계의 갯벌, 새만금을 살려달라고, 생명을 해치는 일체의 행위를 참회한다고. 너무나 진부해진 말 ‘생명’이 고통과 묵언(默言)의 몸짓 속에서 간곡하고도 절절하게 살아난다.
가슴이 싸하게 져며드는 그 자리에서 나는 목숨의 위대함을 본다. 잃어버렸던 그 말, 생명 있는 것들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옛어른들의 말이 어느새 살아와 내 안에서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17일, 그들은 수원이었다.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 지친 몸은 오히려 빛나는 정신을 증거했다. 서울에 가까워 갈수록 날씨는 더워져서 땀은 비오듯하고, 차량 배기가스가 독해진다.
우리는 50여 일을 한결같이 기어온 수행자들을 걱정하고 수행자들은 그 와중에서도 교통체증을 걱정한다. 무슨 일 때문에 차가 막히는 지 모르는 채 짜증을 내던 시민들도 이유를 알고는 대부분 호감의 기운을 보탠다. 때로는 따뜻한 박수로, 때로는 친숙한 눈길로. 그 중에서는 호주머니를 터는 사람들도 있다.
원하진 않았겠지만 너무나 유명해진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거기다 전주 나실교회 담임목사인 이희운 목사와 김경일 원불교 교무가 합세함으로써 이번 수행은 종교계 전체가 참여하는 아름다운 수행이 되었다.
박제화된 교리를 놓고는 서로를 “사탄”이라고, “아집덩어리”라고 반목하고 공격했을 종교가 생명과 평화 문제를 공유하니까 대화하고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을 염두에 둔 논리의 싸움에서는 징그럽고 무례하기까지 했던 종교들이 생명의 문제에 봉착해서는 깊이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몸을 바쳐 새만금 사랑, 생명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사랑은 목숨을 거는 절박한 열정, 나를 버려 너를 보호하는 극진한 힘, 나를 버리는 만큼 충만해지는 신비한 힘이라고.
수행자들 외에도 그들이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사람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 땅을 울려퍼지는 삼보일배의 향기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수행자들과 함께 먹고 노숙하며 수행자들이 삼보일배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람들, 밥을 해다 나르는 사람들, 특이한 것은 그 중에 경찰들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시위대와 대립했던 경찰이 삼보일배팀을 앞에서 경호하고 뒤에서 보호하면서 교통정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저 사람들이 진짜 경찰이구나, 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물을 나눠 마시며 함께 하는 경찰, 그들 중에는 일념의 수행자들을 보고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특별히 사람의 향기를 지닌 경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삼보일배의 치열한 의식이 모두를 저 깊은 곳에서 만나게 하는 것일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