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일남 언론인 | ||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에 대한 그 고장 팬들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미스터 초이 아닌 ‘미스터 최’로 정명(正名)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지역신문을 중심으로 나타난 그같은 분위기를 전해 들으며 스포츠의 별난 시너지 효과를 새삼스럽게 느낀다.
최희섭 이전에 박찬호와 김병현이 있었다. 94년 LA다저스에 둥지를 튼 찬호의 그후 약진은 눈부셨다. ‘눈물 젖은 햄버거’를 씹은지 7년 만에 메이저 투수 10걸 가운데 7번째 반열에 올랐다. 마침내 올스타전 마운드를 밟고 미구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적을 옮겼다.
올 시즌부터 선발투수로 나선 ‘애리조나의 방울뱀’ 김병현의 급부상 역시 대단하다. 톡 솟아오르다 툭 휘는 언더스로 투구로 팀의 마무리를 도맡아 메이저리그 구원투수 1위에 오르는 등 다이아몬드백스의 ‘소방수’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요새는 그렇지도 않지만 두 선수의 활약은 그들만의 성취에 그치지 않는다. 골프의 낭자군까지 포함하면 더더구나다. 부수적으로 코리아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여 미국인과의 서먹한 말머리를 부드럽게 트는 구실까지 한다.
따라서 ‘세리 팩’(박세리)을 상담(商談)의 도입부로 삼으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말이 그럴싸하다. ‘히딩크의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축구가 또 그같은 몫을 담당하는 셈이다.
마침 월드컵 일주년이다. 무슨 무슨 기념일이 거의 다 슬픈 회상만을 일깨우기 십상인 우리 처지에 작년 이맘 때부터 일기 시작한 승리의 노래는 감격에 목마른 국민들의 표정에 모처럼 해맑은 생기가 돌게 만들었다.
지나친 열광을 나무라는 소리가 그러므로 없지 않았으나 그런 사람마저도, 페널티킥이 무언지조차 모르는 아녀자까지도, 살아 생전에 처음 겪는 감동의 순간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을지 모른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우선 허망하다. 빨리 끓고 빨리 식는 생철판 기질을 상투적으로 들먹이려는 게 아니다. 기쁜 화합의 일체감을 확인 공유한 것만도 어딘가 싶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실시된 대통령 선거와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 어차피 한시적인 행사에 대한 심정적 뒷풀이를 밀어내기 마련이었다.
그보다는 다늦게 들통난 휘장사업 로비가 더없이 괘씸하다. 달게 먹은 월드컵에 기어코 독이 든 사실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도둑도 손을 놓고 사기꾼도 임시 휴업을 마음먹는 사이, 그들은 점잔을 빼며 잿밥에만 정신을 판 꼴이다.
4강신화를 이뤘을 때만 해도 유럽리그로 갈 선수가 꽤 많을 듯했는데 고작 4명 뿐인 것 또한 아쉬운 대목이다. 노렸던 관광 특수도 별무신통이다.
함께 월드컵을 치른 일본과는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도 한일전을 벌이는 듯한 양상이 재미있다. 잘 나가던 박찬호, 김병현, 최희섭, 서재응, 봉중근의 저런 굴절과는 반대로, 일본의 이치로, 마쓰이, 노모는 여전히 성적이 빼어나 매일밤 일본의 안방 전파를 탄다. 마쓰이의 뉴욕 양키스 데뷔전엔 2백40명이 넘는 일본기자가 모여들 정도로 일본인들의 관심이 굉장하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는다. 스포츠의 흥망성쇠를 넉넉하게 대하는 구경꾼의 항심으로 다시 돌아가련다. 하다보면 우리 젊은이들이 또 큰일을 저지를지 누가 아는가. 일단 맛본 ‘월드컵 항산’을 디딤돌 삼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