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1년 전 이날, 우리는 효순이와 미선이를 잃었다. 전장도 아니고 불가피한 위기상황도 아니었다. 늘상 다니는 친숙한 마을길에서 아무런 방비 없던 무구한 소녀들은 무장한 장갑차에 깔려 세상을 떠났다. 열 다섯,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인, 한없이 가볍고 한결같이 순수하며 한없이 개방적인 나이였다.
우리의 딸들은 죄 없이 세상을 떠났건만 죄 없는 소녀들을 깔려 죽인 죄 많은 미군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불평등한 소파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딸들이 죽은 그 사건에 대해 우리 법정에 미군을 세워 재판조차 할 수 없었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수 없다면, 억울하고 참담한 이 땅의 사람들의 죽음을 진상조사조차 할 수 없다면 국가는 왜 존재하는 걸까? 또 다른 우리의 딸이, 우리의 누이가, 우리의 피붙이가 어느날 또 그렇게 당한다해도 지금 같은 소파규정이 계속되는 한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죽인 자는 당당하게 활개치고 다닐 것이었다. 불평등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섬뜩하고 참담하고 모욕스럽기까지 한 사건의 진상이 서서히 퍼져가면서 이 땅이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 무력한 나라의 기막힌 백성이구나, 기막힌 국민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우리의 무기는 장갑차가 아니라 작은 빛이었다. 촛불이었다. 잔잔하고 평화롭고 따뜻하게 번져가는 불꽃, 불꽃들.
불꽃들이 번져간 2002년 겨울,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불꽃들의 숨은 힘을 아는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소파를 평등하게 고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촛불들의 힘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했다.
왜 ‘노무현’이었을까? 그것은 분명했다. 마음 속에 촛불을 품은 순수한 이들이 원한 것은 미국총독(?)이 아니라 우리들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미국총독(?)을 뽑지 않으려고 ‘노무현’을 선택한 것이다. 힘들어도 민족자존을 지키겠다고, 살찐 미국의 강아지가 되지 않고 어려워도 스스로 살아가는 건강한 자존의 시민이 되겠다고 노무현을 뽑은 것이다.
노무현 정권 탄생 1백일이 지나고 처음 맞는 6월13일, 효순이 미선이를 잊을 수 없는 불꽃들이 시청 앞에 다시 모였다. 다시 모여 간절히 자주대한 평화민국을 염원했다. 그리고는 아파했다. 한미소파규정을 한 줄도 바꾸지 못한 현실을.
1백일을 ‘겨우’ 넘긴 정부인가, 1백일을 ‘훌쩍’ 넘긴 정부인가? 1백일을 ‘겨우’ 넘긴 정부에게 왜 아직도 소파를 개정하지 못하느냐고 호소하는 것은 우리의 조급이겠지만 1백일을 훌쩍 넘긴 정부에게 왜 소파 개정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질책하는 것은 정부의 무능에 대한 질타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불평등한 소파 개정은 자주대한 평화민국의 염원이라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촛불의 의미다. 평화적인 촛불시위의 정신은 노무현이 이끌었던 정신이 아니라 노무현이 편승했던 정신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촛불들 때문에 당선되었지만 그 촛불들의 목표는 ‘노무현 당선’이 아니라 ‘자주대한 평화민국’이었다.
당연히 참여정부가 촛불시위의 정신을 이어가지 못하면 참여정부는 존재이유를 상실하는 것이다. 아, 대∼한민국, 자주대한 평화민국!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