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프랑스가 자랑하던 마지노선이 이처럼 어이없이 무너진 것은 한마디로 난공불락에 대한 지나친 믿음 때문이었다. 완벽한 방어시설만 믿고 경계를 게을리한 탓이었다.
아무리 막강한 독일군도 마지노요새만은 뚫지 못할 것이라는 과신과 자만이 패전을 자초한 것이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질풍노도처럼 내닫는 징기스칸의 군대를 막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역시 만리장성만 있으면 어떤 적도 침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과신과 방심 때문이었다.
난공불락의 요새에 대한 과신이 패전의 빌미가 되듯이 성공한 사람이나 권력자의 몰락은 어느날 갑자기 ‘등뒤의 비수’로 돌변한 `‘믿는 도끼’들의 배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카이사르가 부르터스의 칼에 쓰러진 이래 권력자를 정상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은 대부분 가까운 심복들이었다. 예를 멀리서 끌어 올 것도 없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쏜 사람은 바로 그의 육사 동기생이자 심복이었던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교도소에까지 보낸 사건은 그가 평소 가깝게 지냈던 어느 의사가 녹화테이프를 폭로하면서부터 크게 확산되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 때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힌 것은 당선자 시절 5인 보좌역 중의 한 사람이었다던 최규선씨의 녹음테이프 때문이었다. 최규선씨는 `DJ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고 테이프 사건이 처음 터진 것도 비서 겸 운전기사가 등을 돌리면서부터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있듯이 성공한 사람들의 입신과 치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생판 모르는 남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성공의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친척이나 측근들이다.
게다가 성공자의 입신과 치부에 일정부분 기여한 사람들은 성공한 뒤의 대접이나 보상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단순한 질투를 넘어 증오심을 가꾸기 십상이다. 어려운 시절, 신산(辛酸)을 같이했던 측근들일수록 성공한 뒤의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소외되거나 충성에 대한 보상이 미흡하다고 생각되면 ‘지가 언제부터…’라는 식의 역심(逆心)까지 품게 마련이다.
‘믿는 도끼’들이 오랫동안 섬겼던 ‘주군’의 발등을 쉽게 찍을수 있는 것은 주군의 아킬레스건(腱)이 어디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도끼’들은 처음부터 접근하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접근했대도 어디가 아킬레스건인지를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성공자가 ‘믿는 도끼’에 발등찍히지 않으려면 가까운 측근에게도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운전기사가 주인의 집을 터는데 앞장섰다는 뉴스는 성공한 사람이 ‘믿는 도끼’를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말해주는 하나의 보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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