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중에서.
루게릭 병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면서 차분하게 삶을 성찰하는 모리 선생이 ‘가족’을 말한다. 여기서 가족은 부모·자식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가족일 뿐 아니라 ‘나’를 지속적으로 지켜봐 주는 편안한 관계, 내가 지속적으로 지키고 싶은 소중한 관계다. 따뜻한 시선으로 언제나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안정감이 생기고 내가 계속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책임감이 생긴다.
1984년, 미국 아칸소주(州)의 한 마을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 자동차가 다리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그 사고로 20세의 청년 테리 월리스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19년이 흘렀다. 눈을 깜빡이거나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 전부였던 테리, 그는 이제 서른아홉의 중년이었다.
그가 19년 만에 입을 열었다. “엄마∼.” 아들의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나온 순간 엄마는 기절해버렸다. 감당하기에도 벅찰 만큼 강력하고 충만한 경험이었으므로.
19년간 주말마다 가족들은 재활센터에 입원해 있는 그를 집으로 데려갔고, 집안행사가 있으면 휠체어에 앉혀 당당히 그를 참여시켰다고 한다. 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족’이 없었더라면, 아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간곡하게 기도하는 가족이 없었더라면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살아만 다오, 하는 따뜻하고도 간절한 염원이 기적이다. 극진하게 보살피게 만드는 사랑이 기적이다.
사랑을 하면 19년을 보살피기만 하고도 손해봤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랑 자체가 보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 사람을 해치는 법은 없다. 박희정의 만화 <호텔 아프리카>에는 햇빛 좋은 날, 오랫동안 꿈꾸듯 호흡을 하는 인디언 남자가 나온다. 대지 위의 모든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는 남자가 걱정되는 꼬마가 남자에게 말을 건넨다.
-몸에 좋지 않아. 해 아래 그렇게 오래 서있으면 어지러워서 넘어져. 아야, 해. 나도 전에 한번 그랬거든.
남자가 크고 부드러우며 강한 손으로 꼬마를 쓰다듬으며 꼬마의 친구가 되어 말한다.
-사랑하면 괜찮아, 해도, 하늘도, 바람, 땅 모두… 사랑을 느끼지. 그들을 사랑하면 돼. 그러면 그 무엇도 너를 해치지 않아.
사랑하면 그 무엇도 ‘나’를 해치지 않는다. 잘살거나 못 살거나,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어른이거나 아이거나, 정치적 성향이 같거나 다르거나,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가슴이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이와의 인연이다.
사랑하면 돼. 그러면 그 무엇도 너를 해치지 않아, 자꾸 그 말이 맴맴 돈다. 그럴 것이다. 누워있는 사람도 귀찮아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랑이니까. 사랑하는 사람만이 생긴 그대로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니까.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