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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인 이광훈 | ||
“연나라와 조나라 사이를 흐르는 역수 가에서 도요새와 조개가 서로 물고 버티는 바람에 지나가던 어부가 도요새와 조개를 다 잡아가더라”는 내용이었다. 소대는 조나라 왕에게 조나라가 연나라를 침공하면 진나라가 두 나라를 한꺼번에 집어삼킬 것이란 경고를 보낸 것이다.
요즘 한나라당의 예비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사이의 집안싸움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후보 검증론으로 시작한 두 캠프 간의 공방전은 마침내 막말 직전까지 갔다. 이 전 시장이 “나처럼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고, 고3 4명을 키워봐야 교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다”며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비수를 날렸다.
그러자 박근혜 전 대표가 발끈하며 맞받아쳤다. “다음 국가 지도자는 반드시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지도자는 경제전문가가 아니라 경제지도자”라고 꼬집었다. 이명박 전 시장이 가는 곳마다 전문경영인 출신임을 내세우며 자신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국가지도자라고 역설한 것에 대한 반론이었다.
당초 박근혜 전 대표가 대선후보 검증론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이·박 두 예비후보 간의 용호상박(龍虎相搏)은 이처럼 막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 전 시장이 ‘애를 낳아봐야’ 운운한 발언에 대해 사과한 데 이어 공석에서는 두 사람 모두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는 있다. 그러나 환한 미소 뒤에 감춰진 비수를 칼집에 넣은 것은 아니다.
지지도 1, 2등을 달리는 두 예비후보의 드잡이를 보면서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1997년과 2002년의 악몽을 떠올린다. 잘나가다가 중간에 삐끗하는 바람에 두 차례나 집권에 실패한 과거의 전철을 이번에 또 다시 밟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 때문이다. 97년에는 경선을 다투던 주자가 뛰쳐나가 표를 갉아먹는 바람에 패배의 쓴잔을 마셨고 2002년에는 너무 일찍부터 선두를 지키는 지지도만 믿고 자만하다가 결국 대선에서 잇달아 패배하지 않았던가.
이명박 전 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는 자신들에 대한 지지가 여당 후보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여당에서 외부영입이든 당내경선이든 새로운 인물이 후보로 등장하면 지지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12월 대선까지는 쇠털같이 많은 날들이 남아있다. 비록 지금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흐르는 물 같은, 조석으로 변하는 지지도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정이 그런데도 벌써 예선부터 힘을 빼면 본선에서는 무슨 힘이 남아있어 종착점까지 달려 우승 테이프를 끊겠는가. 우리는 아마도 오는 12월 대선에서 ‘집토끼’들끼리 마치 도요새와 조개처럼 싸우다가 뒤늦게 ‘어부지리’의 교훈을 되씹으며 회한에 땅을 치는 패자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