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비 자산화 놓고 “불확실성 해소” vs “중소·벤처 투자 위축 우려”
인천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연합뉴스
금융위가 발표한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관련 감독지침의 주요 내용은 논란이 됐던 ‘연구개발비’ 자산화 기준이다. 일부 제약·바이오기업이 무형자산으로 처리해오던 연구개발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 자산화 기준은 ▲신약의 경우 임상 3상 개시 승인 이후부터 ▲바이오시밀러는 임상 1상 개시 승인 이후 ▲제네릭(복제약)은 생동성시험 계획 승인 이후 ▲진단시약은 제품 검증 이후부터다.
금융위는 또 연구개발비를 자산화한 기업에 대해 자산화한 금액을 개발단계별로 재무제표에 주석으로 공시토록 했다. 금융위는 현재 감리가 진행 중인 22개 제약·바이오기업에 대해서도 감리 결과 발견된 연구개발비 자산화 관련 판단 오류에 대해 경고 및 시정조치 등 계도하기로 했다.
업계는 일단 안도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금융감독원(금감원)의 테마감리가 조용히 마무리될 전망이기 때문. 금감원의 감리 결과 다수 기업에서 회계처리 기준 위반이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들 기업 또한 오류를 자체적으로 수정할 경우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게 됐다.
더욱이 금융위가 지침에 따라 재무제표를 재작성해 영업손실이 증가하며 관리종목이 될 가능성이 커진 기업에 대해 기술특례상장기업 요건에 준해 지원키로 하면서 상장폐지 리스크까지 사라졌다. 현행 규정상 5년 이상 영업적자인 경우 상장폐지 요건이 되지만 이들 기업에 대해 장기간 영업손실 요건을 일정기간(3~5년간) 면제키로 한 것이다.
한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이미 기업이 자산화 부분 등 사업보고서를 수정해 크게 바뀔 것은 없다”면서도 “세부적인 지침이 발표됐으니 가이드에 잘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업계 내부에서도 자산화 부분을 투명하게 하자는 의견이 있어왔는데 이번 지침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회계 조정으로 퇴출 조건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아진 기업에 대해 지원해주는 부분은 앞서 나온 금감원의 ‘구두지침’ 때보다 나아진 면”이라고 전했다.
주식시장에서도 제약·바이오기업이 강세를 보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감독지침을 통해 회계 감리 기준이 정립되면서 제약·바이오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회복됐다”며 “제약·바이오주는 실제 실현된 실적보다 예상 실적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기에 이번 금감원 지침은 제약바이오주의 주가 흐름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한편에서는 다수 중소·신생기업들이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침에 따른 회계처리 수정으로 영업손실이 확대되면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상장작업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상장사나 그간 이슈가 됐던 기업들은 리스크를 털어내고 시장에서 자금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한 스타트업 형태의 연구개발(R&D) 바이오벤처들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연구개발을 위주로 하는 중소·신생기업들이 회계감사를 보수적으로 받으면 기술 자산화가 어려워질 것이고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는 회사도 많아진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R&D가 활발했던 중소·신생기업이 줄어들 경우 국내 바이오산업 생태계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신약개발이 어려운 국내 환경에서는 연구개발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이후 기술 이전을 통해 자금을 모아 다른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것이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바이오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바이오산업체의 종사자 규모별 분포는 1명 이상 50명 미만 기업이 57.7%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50명 이상 300명 미만인 기업은 29.1%이며 300명 이상 1000명 미만은 8.4%, 1000명 이상인 기업은 4.8%에 불과하다. 또 바이오산업의 수출액은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해 2012~2016년 5년간 연평균 9.9%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2012년 3조 475억 원이던 수출액은 2014년 3조 4052억 원으로 뛰었으며, 2016년에는 4조 4456억 원을 기록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중소·신생기업들의 연구개발은 국내 바이오산업의 성장동력인데, 회계가 보수적으로 이뤄져 발전 가능성이 큰 기술을 확보한 기업의 가치가 낮아지는 등의 결과로 스타트업의 발목을 붙잡으면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새로운 산업군이니만큼 정부가 R&D 비용 회계처리에 대한 부분뿐 아니라 바이오기업의 상장 유지와 퇴출 시 재상장 등 다각도로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한 고민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