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 배당해 놓고 ‘만지작’…“올해 안에 수사 개시 어려울 듯”
# “수사 착수하기까진 걸리는 게 많은 사건”
“사건이 쉽지 않다.” (금융 전문 검찰 관계자)
금융 사건 흐름에 밝은 한 검사가 털어놓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에 대한 판단이다.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에서 이미 고발 여부를 놓고도 쉽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는 “금융위에서도 분식회계 부분은 고발 못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치우쳤을 만큼, 애매한 영역이 많은 사건”이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문제가 아니라 법리가 문제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압수수색에서 뭔가 새로운 게 나올 수는 있지만, 없을 경우 유죄인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여부를 가려내는 감리위원회에 소명하기 위해 정부청사에 들어오고 있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최준필 기자
그렇다면 삼성바이로직스 공시의무 위반 사건의 어떤 부분이 문제일까. 바로 분식회계에 대한 고의성과 그에 대한 유죄 판단 여부다.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달 12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을 미국 바이오젠사에 부여하고도 고의로 공시를 누락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담당 임원에 대한 해임권고와 검찰 고발 등의 제재를 결정했다. 하지만 가치 평가를 하는 과정에서 삼성 측이 분식회계를 했다는 금융감독원의 지적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금융위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를 공정가치로 임의 변경해 분식회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정했다. 대신 결론의 여지는 열어뒀다. 금감원에 새로운 감리를 요청했고, 금감원은 이에 착수한 상황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고발로 사건은 검찰에 먼저 접수됐다. 참여연대는 금융위가 고발하지 않은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법인과 회계감사를 벌인 2개 회계법인 대표를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 등 위반 혐의로 지난 7월 검찰에 고발했다.
# 특수부 배당했지만, 수사팀도 숨고르기
검찰은 검토 끝에 사건을 특수2부에 배당하면서도, 사건 자체에 대한 본격 수사 착수는 하지 않고 있다. 사건을 착수하려면 확실한 혐의가 정리되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 만큼의 증거들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게 사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뇌물수수 등 1심 재판이 끝났지만, 수사팀의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는 단순한 기업의 공시 의무 위반, 분식회계 의혹 사건이 아니”라며 “이미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까지 된 적이 있지 않냐. 주가 관련 조작과 이 부회장 지분 확보 의혹으로 확장될 수 있는 사건은 더더욱 쉽게 착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제 흐름이 좋지 않은 점도 삼성 측에 유리하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뇌물 관련,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뒤 3년 동안 180조 원(국내 투자 130조 원)을 투자, AI·5G·바이오·반도체 중심 자동차 전장부품 등 4개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계획을 밝혔다. 김동연 부총리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직후 내놓은 ‘화답’ 성격의 발표였다.
특수 수사에 밝은 한 차장검사는 “대기업은 털어서 혐의가 안 나올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경제가 안 좋을수록, 나라를 대표해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기업을 수사하는 것은 검찰 입장에서 부담스럽다. 삼성 내 바이오 관련된 신사업 영역을 책임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 개시 결정 과정에는 최저임금제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등으로 인한 경제 불황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사팀도 잠시 쉬어가는 사건으로 시간을 벌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 10일, 회사 돈 수십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을 받는 김도균 탐앤탐스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대표는 2009년~2015년 우유 제조업체들로부터 받은 우유 판매 장려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혐의다. 가맹점 납품 과정에서 통행세를 받았다는 혐의도 있는데, 특수부 입장에서는 ‘시간을 벌기 위해 하는 소소한 사건’이라는 게 특수 수사에 밝은 검찰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 맘 졸이는 삼성그룹…굵직한 사건 3건 잔류
“올해 안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 착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금 더 우세하지만, 삼성그룹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와 3차장검사 산하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을 포함, 삼성그룹 사건이 3건이나 배당돼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에버랜드 표준지 공시지가 급등락 의혹 사건을 3차장 산하 특수4부(김창진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국토부가 에버랜드 표준지 선정과 공시지가 평가 등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지난 4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지 4개월여 만에 나온 결정이다.
앞서 국토부는 내부 감사를 통해, 에버랜드 표준지 선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표준지의 선정 및 관리지침’에 따라 표준지 변경 등이 필요할 때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해야 한다. 그런데 표준지 1개를 임의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해당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하지 않는 등 표준지 선정 절차를 위배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이미 수사가 벌어지고 있는 삼성그룹 미전실의 삼성 노조 와해 의혹 수사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2차장 산하 공공형사수사부(김수현 부장검사)는 지난달 14일 옛 삼성그룹 미전실의 강 아무개 부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삼성그룹 미전실 차원의 개입 여부를 확인 중이다. 강 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결국 기각됐지만, 노조 와해 과정에서 미전실이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됐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지난해 10월까지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으로 근무한 이상훈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10일 청구하며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 고위직 출신 법조인은 “삼성그룹은 지난 정권과 함께 적폐로 몰렸다가 수사기관에 유무죄를 1차적으로 판단 받는, 마지막 순간에 와 있는 셈”이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 개시 여부와 시점은 앞으로 문재인 정부 지지율과 경제 흐름 등 사건 법리를 넘어서는 부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삼성에게는 유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재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