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권 일부 대학 기숙사 경비원 상주 않는 곳도…“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출입 가능”
최근 부산대학교 여자전용기숙사에 한 남성이 무단 침입해 여학생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시도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부산대학교 전경. 제공=부산대학교 홈페이지.
지난 16일 부산대 중앙도서관 옆에 위치한 여성전용 기숙사인 ‘자유관’. 술에 취한 남성 A 씨(26)는 오전 1시 40분쯤 이 기숙사 출입구를 무단으로 들어섰다. 출입 카드를 찍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여대생의 뒤를 바짝 쫓은 것. A 씨는 문이 닫히기 전 재빨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A 씨는 기숙사 3층까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올라갔다.
기숙생들 진술에 따르면, A 씨는 3층 기숙사 방문을 두드리며 복도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A 씨는 여학생 B 씨를 발견, 실랑이를 벌이며 인적이 드문 계단으로 끌고 갔다. A 씨는 B 씨에게 입맞춤을 하는 등 성폭행을 시도했고 이에 반항하는 B 씨를 주먹으로 폭행하기까지 했다. 부산 금정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피해 학생은 시험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며 “비명 소리를 들은 학생들이 경찰에 최초 신고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지난 18일 성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강간 등 상해·치사)로 구속됐다. 금정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가해자는 술을 많이 먹은 상태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학생들은 허술한 기숙사 보안·관리가 사건 발생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숙사 입구엔 경비실이 있었지만 당시 경비원은 근무를 서지 않았다. 새벽 1시부터 5시까지는 기숙사 출입 제한시간이란 이유로 경비원이 잠자리에 들었던 것.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날은 도서관 등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출입을 24시간 허용하는 시험 기간이었다. 출입 감독이 필요했지만 경비 근무는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경비원은 A 씨의 침입을 뒤늦게 인지하고 사건 현장으로 뛰어올라와 A 씨를 제지, 경찰에 인계했다.
기숙사 출입 시스템도 문제였다. 지난 2013년 부산대에선 타 대학 남학생이 기숙사에 침입, 잠자던 여학생을 때리고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학교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여성전용 기숙사인 자유관을 신축했다. 하지만 과거 성폭행 사건의 원인이 된 ‘카드 출입 시스템’은 개선하지 않았다.
부산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올 6월, 카드 출입 시스템은 이전 기숙사와 동일한 시스템으로 안전문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학교 측에 문제제기했다. 스피드게이트나 생체인식 출입 시스템 구축을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기숙사 운영을 총괄하는 대학생활원은 자유관 내에 위치하고 있어 생활원 직원들이 기숙사에 출입하며 보안 문제를 느낄 만도 했지만 이에 대한 시정 조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A 씨는 보안 출입문 2개를 연이어 통과했다.
더군다나 1300여 명에 이르는 자유관 기숙생들의 안전은 고작 경비원 2명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당시 최초 신고 학생은 기숙사에 설치된 비상벨을 수차례 눌렀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 비상벨은 학교 측이 2013년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서 마련한 대응책 중 하나다. 벨을 누르면 경비실이 위급상황을 인지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선 무용지물이 됐다.
부산대 학생들은 사건 발생 후 두려움을 표하고 있다. 부산대 한 재학생은 “시험기간인데 신경도 많이 쓰이고 굉장히 무섭다”며 “방에 흉기라도 둬야 하나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학생은 “첫 문은 그렇다 쳐도 그 다음 문은 어떻게 열고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기숙사 퇴사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대는 사건 발생 후 사설 전문경비인력을 투입하고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심리 상담 시스템 도입 등을 뒤늦게 강구하고 있다. 부산대 관계자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도 이뤄질 예정”이라면서도 “생체인식 시스템, 스피드게이트 설치는 검토한 바 있으나 관리나 비용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있어 기존의 카드출입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권 여타 대학들의 기숙사 중에도 보안이 허술한 곳이 적지 않다. 한 여자대학교 기숙사 출입문에 설치된 카드 출입 시스템 기기.
C 대학교 경비원은 “원래는 경비실마다 경비원들이 있었는데 인원이 줄어들면서 빈 경비실이 생겼다”고 말했다. 기숙사 출입 시스템은 부산대학교와 동일한 카드출입 시스템이다. 부산대보다 범죄에 더 취약한 환경인 셈이다. 본교와 거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한 D 대학교 여성전용기숙사는 더 높은 보안을 필요로 하지만 이곳도 경비원은 2명에 불과하다.
경비원이 항시 상주하지 않는 기숙사도 존재한다. E 여자대학교 기숙사는 학교 전체를 관리하는 외부 보안업체 직원들이 기숙사도 함께 관리·감독한다. 그러다보니 기숙사 출입구엔 경비원을 따로 두지 않는다. 지문인식 시스템이 설치된 것이 전부다. 학교 측은 “외부 보안업체 직원이 오고 가며 감시한다”라고 해명했다. E 대학교의 한 조교는 “기숙사 근처에 바로 학교 중문이 있다. 과거 ‘밤늦게까지 작업하고 기숙사로 들어가는 미대 학생들을 중문에서 대기했다가 노리자’라는 글이 한 커뮤니티에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F 여자대학교 기숙사는 두 개의 건물로 나눠져 있지만 경비원은 한 건물에만 위치하고 있다. F 대학 졸업생은 “경비원의 시선이 닿지 못하는 옆 건물 출입구로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대학가에선 학교들이 본질적인 기숙사 보안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영현 전 부산대 총학생회장은 “부산대를 포함한 모든 대학들이 사건이 터졌을 때만 반짝 주의를 기울이고 시간이 흐르면 이에 대한 신경을 끈다. 그때마다 내놓는 대책도 자정이 넘으면 학교 시설들을 폐쇄하는 미봉책들뿐”이라며 “기숙사 펜스를 높이고 실질적인 보안 유지가 될 수 있도록 경비 인원을 늘려야 한다. 신입생과 교수·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진행도 범죄율 저하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