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 ‘현금 디저트’ 드시고 가시게
▲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EPA/연합뉴스 |
오는 2011년 재임을 노리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55)이 뜻하지 않은 암초에 부딪쳤다. 그렇지 않아도 지방의회 선거 참패에 이어 정년 연장을 골자로 하는 연금개혁마저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어 골치가 아픈 마당에 뜬금없이 불법정치차금 스캔들까지 터지고 만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에게 돈봉투를 건넨 상대가 가족 간 재산 다툼으로 한창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 최대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이라는 사실이다. 로레알 그룹의 탈세 및 스위스 비밀 계좌 존재 여부, 그리고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로비 관련 폭로가 잇따르더니 결국은 사르코지의 최측근인 에리끄 뵈르트 현 노동부 장관에 이어 사르코지 본인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수사 과정에서 사르코지 이름이 거론되자 프랑스인들은 2007년 대선 당시 “깨끗한 나라를 만들겠다” “효율적이고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모두 헛구호였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으며, 이런 적대감은 프랑스 역대 대통령 중 최저 수준인 26%의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다.
일명 ‘베탕쿠르게이트’라고 알려진 이번 스캔들의 진원지는 릴리안 베탕쿠르 로레알 회장(87) 저택의 거실이었다. 파리 근교의 뇌이 쉬르센에 위치한 그녀의 저택에는 늘 정치계 거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베탕쿠르가 집으로 초대하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집권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핵심인물들이었다. 이밖에도 전 공화국연합당(RPR) 소속 정치인들과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총리도 베탕쿠르의 단골손님이었다.
베탕쿠르는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한 후에는 꼭 1층 식당 옆에 있는 작은 응접실로 자리를 옮겨 ‘디저트’를 대접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디저트’가 다른 것도 아닌 바로 ‘현금 뭉치’라는 데 있었다. 그리고 이 ‘디저트’를 받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사르코지도 있었다.
베탕쿠르의 이 은밀하고 특별한 ‘디저트’를 폭로한 사람은 13년 동안 베탕쿠르의 자산관리회사인 ‘끌리멘느’ 소속 회계사로 일했던 끌레어 티부(52)였다. 그녀는 인터넷 신문인 <메디아파르>(mediapart.fr)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베탕쿠르 집으로 진군했다. 선거철이면 특히 심했다”라고 폭로했다.
▲ 릴리안 베탕쿠르 로레알 회장. AP/연합뉴스 |
이렇게 준비한 현금은 손님들이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다시 1만 유로(약 1500만 원)씩 봉투에 넣은 후 서류가방 안에 준비해 두었다. 손님들이 가방 안에서 마음껏 꺼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끌레어는 “앙드레는 이런 방법을 좋아했다. 봉투 수에 따라 총액을 쉽게 파악하기 위해서였고, 또 혹시 봉투가 남을 경우에는 재빨리 남은 액수를 계산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봉투가 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07년 대선 기간에는 특히 그랬다. 끌레어는 그해 1월부터 4월까지 문턱이 닳도록 은행을 드나들었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자주 은행에서 돈을 인출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불법정치자금으로 그녀가 인출한 금액은 총 38만 8000유로(약 6억 원)였다.
사르코지가 베탕쿠르의 단골 손님이었던 것은 지난 1983~2002년 뇌이 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정기적으로 베탕쿠르의 집을 찾았던 사르코지는 그때마다 은밀하게 돈봉투를 받아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끌레어는 “베탕쿠르 저택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사르코지가 돈을 받으러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문제는 또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거액의 현금을 한꺼번에 인출할 때에는 반드시 ‘트락팽’(프랑스 비자금 경로 감시국)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베탕쿠르는 이런 규정을 비웃는 듯 보였다. 신고하기는커녕 무려 13년 동안 한 번도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300만 유로(약 47억 원) 이상의 재산에 대해서는 3년마다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을 마련하고 있지만 로레알을 비롯한 친엘리제궁 기업들은 번번히 그 대상에서 제외되곤 했다.
오히려 세무조사를 받기는커녕 세금을 환급 받기도 했다. 베탕쿠르는 지난 2008년 1월 사르코지 내각의 핵심인물이자 당시 예산장관이었던 뵈르트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그리고 두 달 후인 3월 약 3000만 유로(약 470억 원)의 세금을 환급 받았다. 베탕쿠르가 낸 세금이 4000만 유로(약 620억 원)였으니 세금으로 고작 1000만 유로(약 150억 원)만 낸 셈이 된 것이다. 배당 수익이 2억 8000만 유로(약 4300억 원)인 기업에서 내는 세금이 그 정도라는 것은 분명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로레알이 이렇게 ‘환상의 과세표준’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사르코지 정부의 핵심 실세인 뵈르트 전 예산장관에게 제공한 ‘디저트’ 덕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끌레어는 이와 관련해서 베탕쿠르가 사르코지 대선캠프에 불법대선자금을 건넸다는 정황에 대해서도 폭로했다. 선거를 두 달 앞둔 지난 2007년 1월 말 끌레어는 드 메스트르로부터 “당장 15만 유로(약 2억 3000만 원)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평소보다 훨씬 큰 액수였다. 이에 드 메스트르는 “사르코지 캠프의 실세인 뵈르트를 만나기로 했다. 때문에 5만 유로 정도를 줬다가는 티도 안 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UMP당의 재정담당 책임자이자 정치자금 모금을 담당했던 뵈르트는 거액의 기부자들을 끌어모으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며, 이런 까닭에 주위에는 늘 내로라하는 후원자들이 들끓고 있었다. 당시 그가 모금한 액수는 700만 유로(약 100억 원)에 달했었다.
문제는 로레알이 기부한 후원금 액수가 불법이라는 데 있었다. 프랑스의 정치자금법은 개인이 정치인 한 명당 기부할 수 있는 액수를 최대 4600유로(약 700만 원)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현금 형태로는 150유로(약 25만 원)까지만 가능하고, 이를 초과하는 금액은 반드시 수표로 끊어주도록 하고 있다. 정당 기부 역시 연간 7500유로(약 1100만 원)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런 까닭일까. 사르코지 정부가 들어서면서 뵈르트와 베탕쿠르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지는 듯했다. 2007년 가을부터는 뵈르트의 아내이자 회계사인 플로렌스가 베탕쿠르의 자산관리회사인 ‘끌리멘느’에 일자리를 얻어 연봉 18만 유로(약 2억 8000만 원)를 받기 시작했으며, 이듬해 1월 정부는 보답이라도 하듯이 드 메스트르에게 프랑스 최고 훈장 가운데 하나인 ‘레종드뇌르’를 수여했다.
하지만 뵈르트의 아내가 ‘끌리멘느’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야당을 비롯한 프랑스 여론은 더욱 들끓기 시작했다. 당시 기업의 탈세를 감시하는 역할인 예산장관직에 올라 있었던 뵈르트가 베탕쿠르의 탈세를 방조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베탕쿠르와 정치인들의 은밀한 관계가 처음 드러난 것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였다. 베탕쿠르 집안의 재산을 둘러싼 법정 싸움에서 증거물로 제출된 베탕쿠르의 전화통화 녹음테이프가 그것이었다. 말하자면 집안싸움이 정치 스캔들로 번진 꼴인 것이다.
이 녹음테이프는 20년 동안 베탕쿠르의 집사로 일했던 파스칼 본느프가 2009년 4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약 1년 동안 몰래 녹음했던 것으로, 모두 21시간의 통화내용이 28개의 CD에 복사되어 있다. 주된 내용은 베탕쿠르와 재산관리인 드 메스트르, 변호사 고귀엘, 그리고 베탕쿠르의 오랜 친구이자 재산 싸움의 핵심 인물인 프랑수아-마리 바니에(62) 간 주고받은 대화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귀가 어두웠던 베탕쿠르는 통화를 하다가 곧잘 “큰 소리로 말하세요”라고 요구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또렷한 통화 내용을 제공하게 된 계기가 됐다.
전화통화를 녹음한 이유에 대해 집사는 “더 이상 마님께서 비양심적인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것을 보기 싫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재산을 노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베탕쿠르가 얼마나 당하고 있는지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실제 베탕쿠르는 여든이 넘은 고령인 까닭에 전화 통화 중간에 코를 골면서 잠이 들거나 혹은 심한 건망증으로 자신이 방금 한 말이나 재산 내역을 곧잘 잊어버리곤 했다. 대화 중간마다 “그런데 올해가 몇 년도지?”라고 묻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런 점을 악용한 드 메스트르가 베탕쿠르에게 ‘선물’을 사달라며 조르는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도 있었다. 드 메스트르는 “좀 까다롭기 한데…저를 돕고 싶으면 요트 한 척을 사주면 됩니다. 요트 구입비 30만 유로(약 4억 7000만 원)는 스위스 계좌에서 인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베탕쿠르는 “혹시 내가 스위스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요?”라고 묻자 드 메스트르는 “제가 알기론 6000만~8000만 유로(약 930억~1200억 원) 정도가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본느프 집사의 처음 의도와 달리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전화통화 내용을 통해 베탕쿠르의 구체적인 탈세 방법 및 스위스 계좌 존재 여부가 공개됐고, 정치인들에게 불법자금을 건넨 대가로 세무조사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과 뵈르트가 베탕쿠르에게 아내의 일자리를 청탁했다는 사실, 그리고 결국은 사르코지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만 것이다.
가령 드 메스트르는 “6500만 유로(약 1000억 원)가 있는 스위스 계좌 보여준 적 있죠? 프랑스와 스위스 양국이 앞으로 금융정보를 교환한다는 약정에 합의했기 때문에 머지않아 이 돈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우루과이가 어떨까 합니다”라고 말해서 재산 은닉 및 탈세 의혹을 부추겼다.
불법 정치자금 전달을 의심케 하는 정황도 여러 군데서 포착됐다. 한 통화에서 드 메스트르는 “사르코지 대선 캠프에 반드시 기부금을 전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니까요”라고 말했는가 하면, “뵈르트를 이용해서 호텔의 건축 허가를 받으면 됩니다. 그렇게 세금을 줄여야 하지요”라고도 말했다.
또한 어느 날 통화에서는 드 메스트르가 “뵈르트에게 7000유로(약 1000만 원)를 건넸습니다”라고 보고하자 베탕쿠르가 “사르코지는요?”라고 묻는 부분이 나온다. 이에 드 메스트르는 “제가 알아서 잘 챙기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녹음테이프가 증거로 제출되자 지난 7월 1일 시작된 재판은 현재 가을까지 연기된 상태다. 한편 집사의 전화 녹음테이프 공개와 끌레어 회계사의 폭로로 뜻하지 않게 쑥대밭이 된 사르코지 정부는 현재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사태를 무마하려 애쓰고 있다. 사르코지는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나는 베탕쿠르 집에서 돈 봉투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돈을 벌려고 했으면 정치가보다는 다른 직업을 택했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또한 연금개혁을 앞둔 정부의 신뢰를 추락시키려는 중상모략이라고 비난하면서 올가을 앞당겨 내각 개편을 단행할 것을 선포했다. 또한 악화된 민심을 고려해서 엘리제궁의 연례행사인 ‘가든파티’도 올해는 열지 않기로 했다.
뵈르트 장관 역시 “나는 베탕쿠르로부터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편, 야당의 사임 요구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굳건히 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 베탕쿠르 로레알 회장(왼쪽)과 그의 친구이자 전속 사진작가 베니에. |
외동딸 vs 절친 유산상속 전쟁
프랑스의 유명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의 회장인 릴리안 베탕쿠르(87)는 세계 최고의 여성 갑부이자 프랑스 3번째 갑부이다. 창립자 유진 슈엘러의 외동딸로 현재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개인 자산은 170억 유로(약 25조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베탕쿠르는 로레알 지분의 31%를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30%는 외동딸이자 로레알 임원인 프랑수아즈(56)가, 그리고 20%는 네슬레 기업이 각각 보유하고 있다.
평소 베탕쿠르는 재산의 92%를 외동딸과 두 손주에게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2007년 10월 작성된 유언장 내용이 공개되면서 두 모녀 간의 전쟁은 시작됐다. 이유인즉슨 베탕쿠르가 자신의 20년지기 오랜 친구이자 전속 사진작가인 프랑수아-마리 베니에(62)에게 딸과 손주들에게 상속하는 재산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몽땅 상속할 것을 명시해두었기 때문이다. 이미 베탕쿠르는 1995년부터 2000만 유로(약 300억 원)의 현금을 비롯해 인도양의 아로스 섬 등 부동산과 6억 유로(약 9300억 원) 상당의 보험증서, 피카소, 세잔 등 명화 등 총 10억 유로(약 1조 5000억 원)를 베니에에게 증여한 바 있다.
이렇게 베니에를 후원하는 이유에 대해 베탕쿠르는 “그가 나에게 베푼 것에 대한 보답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동딸인 프랑수아즈는 “베니에가 약한 어머니를 악용해서 돈을 빼돌렸다”며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일례로 그녀는 어머니가 건강 악화로 쓰러졌던 2003년과 2006년에 베니에에게 증여가 이루어졌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어머니가 정신이 멀쩡하지 않을 때를 골라 재산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프랑수아즈는 현재 베니에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실제 집사가 녹음한 전화통화 내용에서도 베탕쿠르가 얼마나 베니에에게 푹 빠져 있었는지는 잘 드러나 있었다. 베탕쿠르는 한 통화에서 “나는 베니에를 무척 좋아한다. 그는 매우 영리하다. 반면 그는 내 목을 조이기도 한다. 점점 더 바라는 게 많아지고 있다. 이것도 줘요, 저것도 줘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탕쿠르는 딸의 소송을 영 못마땅해 하고 있다. 자신이 베니에에게 선물을 한 것은 지극히 멀쩡한 정신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결코 노망이 들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