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기업·먹튀 사장 둘 다 짱나므니다~
▲ 취임 반 년 만에 해임된 마이클 우드포드 전 올림푸스 사장(왼쪽)과 성과에 비해 연봉이 너무 많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회장. |
‘올림푸스 사태’는 당초 일본에서 신 구세력의 다툼, 즉 회사 내분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우드포드 전 사장이 제기한 의혹은 올림푸스 경영진이 2008년 영국의 의료기기 업체를 인수하면서, 자문을 의뢰한 재정 고문 격 기업에 터무니없이 많은 보수를 지불했다는 것이다. 자문료가 자그마치 인수액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억 8700만 달러(약 7700억 원)다. 게다가 이 기업이 카리브 해의 한 섬에 본거지를 둔 유령회사란 의심도 짙다. 사정이 이런데도 문화 차이란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영미권 유력언론은 사건의 철저한 규명을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비단 올림푸스 하나만이 아닐 수도 있다”며 여러 일본기업 내에 부정부패가 있단 점을 암시하기도 했다. 일본 경제지 <닛케이비즈니스>도 “변화하겠다며 외국인 사장을 영입해놓고서는 금방 해고를 하니 과연 개혁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평했다.
사태가 안팎으로 시끄러워지자 결국 기쿠가와 쓰요시 올림푸스 회장까지 물러났다. 또한 노다 일본 총리가 올림푸스 측에 명확한 설명을 요구했으며, 미국 FBI까지 나서 조사할 방침이다.
올림푸스 주가는 우드포드 씨 해임이 발표되자 대폭 하락하는 등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투자자들이 외국인경영자가 없어 구조개혁이 계속 진행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실망한 나머지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는 분석이다.
<일본증권신문>는 “앞으로 외국인 전문경영인 영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일본 내 반응이 시들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올림푸스 사례처럼 기존의 일본인 임원진을 바꾸지 않고, 외국인경영자만 영입해봤자 시장의 기대치는 별반 오르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올림푸스 사태의 진위는 차차 밝혀지겠으나 외국인 CEO와 일본인 경영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확실하다.
그간 일본에서는 외국인 CEO가 세계화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환영받아왔다. 1990년대 말부터 소위 글로벌 경영이 부각되자 보수적인 일본기업에서도 외국인사장이 차츰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전자제품 업계나 자동차 업계는 주 판매처가 미국과 유럽 등지라서 외국인 간부를 채용하는 게 필수적이라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2010년 현재 1억 엔(약 14억 원) 이상 고액 연봉을 받는 외국인 경영진만 해도 36명에 이른다.
또한 일본 내에서 외국인경영자에 대한 호감이 매우 높은 편이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외국인사장 도입에 대해 일반인의 70% 이상이 찬성을 보일 정도다. 대부분의 일본기업이 총수 일가가 세습으로 경영하는 족벌체제 속에서 외국인경영자가 오면 분위기가 쇄신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1999년 프랑스 르노의 자회사인 닛산 자동차 사장으로 부임한 레바논계 브라질인 카를로스 곤(57)의 활약상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는 취임 직후 단행한 인력감축과 세계 각지에 있는 공장 폐쇄 등의 조치로 ‘킬러’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2~3년 만에 2조 엔(약 28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채에 허덕이던 닛산의 경영수지를 흑자로 전환했다. 이후 지금까지 줄곧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르노와 부품을 똑같이 사용하도록 해 생산비를 삭감하고, 언론에 자주 나와 경영 계획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불안해하는 주주들을 안심시키는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곤 사장은 르노의 영업이익이 감소한 2006년부터는 르노 회장으로 취임했는데, 닛산 직원을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아 호감도가 더욱 상승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만족도가 비교적 높다. 코스트 삭감의 일환으로 잔업수당이 줄고, 사내에서 컬러복사도 금지됐지만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곤 사장의 연봉은 현재 일본 내 외국인 사장 중 최고 수준인 9억 8200만 엔(약 130억 원)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외국인경영자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은 것만도 사실이다. 특히 경영실패로 회사에 적자가 쌓이는데도 외국인경영자는 거액의 연봉을 챙겨가는 경우가 그렇다.
미국 CBS방송 프로듀서 출신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회장(69)은 2005년 취임했는데, 지난 3년간 적자가 누적된 데다가 핵심 사업으로 추진해온 3D TV사업도 실패해 곤경에 처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봉이 8억 6300만 엔(약 123억 원)에 달한다. 스톡옵션이 5억 엔(약 71억 원)가량 포함되어 있다고는 하나 큰 액수다.
그런가하면 하워드 회장이 소니 법무책임자로 발탁한 여성변호사 니콜 셀리그먼도 연봉이 2억 엔(약 28억 원)이다. 셀리그먼 변호사는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 때 변호를 한 형사 전문 변호사로 기업 관련 법무 경력이 없다는 점에서 스트링거 회장의 인사가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일본의 외국인경영자들은 평사원 연봉의 보통 100~200배 수준은 거뜬히 받는다. 대체로 연봉이 1억~2억 엔(약 14억~28억 원) 수준이다. 전자기기 업체 교세라의 경우 외국인 임원이 일본인 사장보다 급여가 두 배나 더 많다고 한다.
<주간문춘>에 따르면 이렇게 연봉이 높은 이유는 첫째 영미권에서 전문경영자 급여가 워낙 높게 형성되어 있어서 일본으로 이들을 데려 오려면 고액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기업의 경영자의 급여는 일반사원의 무려 300~500배라고 한다.
둘째는 기업임원급 전문경영자만 소개하는 헤드헌팅 업체가 연봉을 올리려 애를 쓰기 때문이다. 알선하는 직위가 높을 경우 계약성사 시 헤드헌팅 업체 측 수수료는 첫 연봉의 5~7할 정도로 매우 높다.
셋째는 주주총회에서 손쉽게 외국인 경영진의 급여인상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언론보도 등으로 외국인 경영진의 보수가 경쟁업체보다 더 많다고 공개되면, 주주들은 곧 경영혁신을 이룰 것이란 시장의 기대심리로 인해 대개 자사 주가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본다.
일본의 샐러리맨들은 “영미권 경영자 급여수준을 감안하면 그다지 납득 못 할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성과주의인데 실적도 없으면서 고액연봉을 받는 것을 보면 한숨이 난다”고 말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