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작전 세력들과 추가 금전거래 정황…파일 작성 경위 알 것으로 지목된 인물은 미국 도피, 수배 중
#김건희 파일은 무엇을 의미하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병구)에서 열리고 있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관련자들의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공판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가 1차 작전뿐 아니라 2차 작전에도 관여한 정황이 담긴 증거와 증언이 나왔다.
8월 26일 공판에서 검찰은 파일명 ‘김건희’라고 적힌 엑셀 파일 일부 내용을 증거로 공개했다. 파일은 2차 작전의 ‘주포’ 중 한 명인 이 아무개 씨(L 씨)가 대표로 있는 B 인베스트 주식투자 사무실을 검찰이 압수수색하다가 직원 노트북에서 확보한 것이다.
일요신문은 검찰이 재판정 화면에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PPT)으로 띄운 파일의 내용을 받아 적은 뒤 다시 그래픽으로 재연했다. 이 파일의 속성을 보면 작성자는 노트북 주인 직원 A 씨였다. 마지막 인쇄시간은 2011년 1월 13일 오전 11시 35분, 마지막 저장일자도 같은 날 오전 11시 37분이었다. 이때는 주가조작 2차 작전이 한창 진행 중인 시기였다.
파일에는 2011년 1월 13일 주식 6만 105주를 매각했다고 적혀있다. 파일 마지막 저장일자와 날짜가 같다. 또 김 여사 ‘대우계좌’에서 현금을 두 차례에 걸쳐 9억 6000만여 원과 3000만 원을 인출했다고 나와 있다. 주가조작 2차 작전세력이 김 여사 계좌의 주식거래 상황과 잔고, 주식수량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으로 읽힌다.
다만 이들 주가조작 세력이 김 여사 계좌의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현황을 파악만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계좌를 직접 관리했었던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분명하지 않다.
이어 재판부는 파일에 적힌 ‘12%’ 의미에 주목했다. 엑셀 파일 마지막 두 줄을 보면 1월 10일과 11일에 각각 3020만 원과 1200만 원이 기록돼있고, 뒤편에는 12%가 적혀있었다. 8월 26일 공판에서 A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재판장이 “증인(A 씨)이 직접 작업한 것이기 때문에 표 안 계산식이 어떻게 들어가 있는지, 이 셀의 의미가 뭔지 알 것 같다. 1월 10일에 3020만 원 12%, 1월 11일 1200만 원 12%. 이게 무슨 뜻인가”라고 물었다. 하지만 A 씨는 “모르겠다”고 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수수료나 이자일 것으로 추정한다. 첫 번째 가설은 김건희 여사가 주가조작 세력에 지급할 수수료가 12%라는 것이다. 반면 김 여사가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12%의 이자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수수료를 지급했던 이자를 받았던, 김 여사와 작전 세력 사이에 추가적인 금전거래가 있었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거래는 김 여사가 보유한 증권 혹은 은행계좌에 내역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검찰이 김 여사의 계좌내역을 확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파일은 누구의 지시로 만들어졌나
엑셀 파일 작성경위에 대해 B 인베스트 대표 L 씨는 법정에서 “잘 모르겠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오히려 “저희가 김건희 여사 계좌를 관리했다는 말이냐”며 “작성한 재무회계 담당직원 A 씨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8월 26일 열린 재판에 담당직원 A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A 씨는 B 인베스트에서 12년 동안 경리업무를 담당했을 뿐, 투자 관련 업무는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재판정에서 엑셀 파일의 속성을 열었다. 파일을 만든 사람도, 마지막으로 저장한 사람도 A 씨로 돼있었다. 또한 증인 신문 과정에서 문제의 노트북은 A 씨 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이에 검찰은 A 씨에게 ‘김건희’ 파일을 작성한 이유를 물었다.
검사 “증인(A 씨)은 어떻게 2011년 1월 13일 당시 김건희 여사의 대우증권 거래 계좌내역을 알 수 있었습니까.”작성자로 지목됐음에도 작성경위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A 씨 증언은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럼에도 A 씨는 투자가 아닌 경리 업무를 담당했다. 또한 ‘누가 시켜서 작성됐는지’라는 증언을 보면 ‘김건희’ 파일 작성이 본인 의사가 아닌 누군가의 지시일 개연성이 높다. 뒤이어 나온 증언을 보면 A 씨에 업무지시를 할 사람은 L 씨와 민 씨다. 그런데 L 씨는 앞서 4월 공판에서 자신은 파일의 존재조차 모른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파일의 작성경위를 알 만한 인물은 민 씨로 좁혀진다.
A 씨 “이것은 제가 작성한 걸로 돼있지만, 어떤 경위로 누가 시켜서 작성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검사 “그럼 B 인베스트에 증인에게 업무지시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A 씨 “대표 L 씨와 이사 민 아무개 씨입니다.”
#미국으로 도피한 민 씨
민 씨는 미국으로 출국해 1년 가까이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4월 8일 공판에서 재판장이 L 씨에게 “민 씨가 증인(L 씨)의 처남이고 미국으로 도주한 걸로 보인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느냐”고 묻자, L 씨가 “구속되기 전날까지 민 씨와 대화했다. 그런데 구속되고 나서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조사받을 때 민 씨가 도주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답했다.
민 씨는 L 씨 처남이자 B 인베스트 임원이다. 주가조작 2차 작전의 두 거점 B 인베스트와 T 투자증권 사이에 연락책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L 씨와 함께 ‘주포’를 맡은 T 투자증권의 센터장 김 아무개 씨가 권오수 전 회장이나 B 인베스트 측에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민 씨를 거쳐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에 검찰은 권 전 회장과 B 인베스트 L 씨를 주가조작 작전의 머리로, 김 씨와 민 씨를 손발로 보고 있다.
도주 중인 민 씨는 현재 기소중지 상태다. 그런데 민 씨는 처음부터 도피를 고려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공판 내용을 종합해 보면 민 씨는 최소 한 차례 이상 검찰 조사를 받았다. 더 나아가 지난해 9월 초 B 인베스트 압수수색 당시 본인이 사용 중이던 휴대전화뿐 아니라 과거 사용했던 것까지 자발적으로 임의 제출했다고 전해진다.
검찰 조사를 받고 와서도 민 씨는 “나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는 전언이다. 5월 13일 공판에서 김 씨의 증언이다.
판사 “증인은 2019년 9월 16일 출석 요구를 받고 17일 도주했고, 한 달 뒤 검거됐습니다. 도주 전 민 씨와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습니까. 뭐라고 말하던가요.”이처럼 검찰 수사에 자신감을 내비치며 김 씨에게 도피를 권유하던 민 씨가 도주한 것은 2021년 10월부터 12월 사이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 진행되면서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던 때다.
김 씨 “도주 몇 시간 전에 민 씨를 만나 같이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수차례 B 인베스트 대표 L 씨, 민 씨, 제가 향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민 씨가 ‘주모자는 형(김 씨)이야. 형만 없어지면 되겠네’라고 해서 ‘내가 왜 주모자야’ 그랬습니다. 제가 ‘너(민 씨)는 어떻게 하냐’라고 물었더니, 민 씨가 ‘나는 주요 피의자가 아니라 문제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 대화를 마지막으로 나누고 저는 ‘잠수 탈게’하고 도주했습니다.”
이에 당시 정치 상황과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김건희’ 파일이 민 씨 도피 결정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민 씨가 파일을 작성한 경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지목된 만큼, 그가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으면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연루 의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19일 열린 공판에서 ‘민 씨 소재를 파악 중이냐’는 재판장 질문에 검찰은 “적색 수배를 걸어둔 상태”라며 “범죄인 인도 청구도 완료했다”고 답했다. 또한 “미국 현지에서도 주소를 특정해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위에 공개된 증거와 수사기록들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검찰은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 2년 넘게 수사 마침표를 찍지 않고 있다. 현재 김건희 여사 건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에서 담당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계속 수사가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변만을 반복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이 서명해 당론으로 발의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으로 집권여당과 검찰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