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단절” 해명 이후에도 ‘주문권한’ 준 정황…김건희 여사 2년째 수사 중인 검찰 부실 수사 행태 도마 오를 수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병구)에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자들의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공판이 열리고 있다. 벌써 20여 차례 기일이 진행된 상태다. 그런데 검찰과 피고인 측 변호인이 증인을 두고 법리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 측이 그동안 내놓은 해명과 배치되는 증거들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이 논란이 되자, 윤석열 당시 후보 측은 “김건희 여사는 이 아무개 씨가 골드만삭스 출신 주식 전문가이니 믿고 맡기면 된다는 말을 믿고 2010년 1월 14일 신한증권 주식계좌를 일임했다”며 “네 달 정도 맡기니 도이치모터스 외 10여 개 주식을 매매했는데, 4000만 원가량 손실을 봤다. 그래서 2010년 5월 20일 남아있던 도이치모터스 주식 모두를 김건희 여사 명의의 별도 계좌로 옮김으로써 이 씨와 관계를 끊었다”고 했다.
당시 공개된 김 여사 신한증권(현 신한금융투자) 계좌 거래내역을 보면 2010년 5월 20일 김 여사 명의의 동부증권(현 DB금융투자) 계좌와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와 ‘선수’ 이 아무개 씨 관계가 그 후에도 이어진 정황이 나왔던 것으로 뒤늦게 파악됐다. 지난 4월경 열린 공판에서 검찰 측은 김 여사가 2010년 6월 16일 동부증권에 전화한 녹취록을 언급했다.
그 내용을 보면 김 여사는 동부증권에 전화해 ‘저(김건희)와 이○○을 제외하고는 거래를 못하게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은 이 아무개 씨가 집에서 쓰는 이름으로, 명함에도 이○○이라고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2010년 5월 20일 이후 동부증권 계좌에서도 이 씨에게 ‘주문 권한’을 줬다는 사실을 검찰이 밝힌 셈이다.
이는 앞서 윤석열 후보 측에서 내놓은 ‘2010년 5월 20일 남아있던 도이치모터스 주식 모두를 별도 계좌로 옮김으로써 이 씨와 관계를 끊었다’는 해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권오수 전 회장 변호인 측도 김건희 여사 관련 증거를 제시했다. 김 여사와 신한증권 직원 간의 2010년 1월 12일과 13일 전화주문 녹취록이다. 두 날은 앞서 윤석열 경선 캠프가 공개한 김 여사의 신한증권 계좌 거래내역 기준 도이치모터스 주식 매수가 이뤄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2010년 1월 12일 녹취록에 따르면 신한증권 직원은 김 여사에게 도이치모터스 실시간 주가 변동을 설명하면서 “이사님, 조금씩 사볼까요”라고 말했다. 이에 김 여사가 “그러시죠”라고 답하자, 직원은 “2400원까지 급하지 않게 조금씩 사고, 중간에 문자를 보낼게요”라고 응대했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 씨 역시 “1월 12일 거래는 본인이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설명한 바 있다.
이어 2010년 1월 13일 전화주문 녹취록을 보면 이날 매수 거래는 이 씨가 전화주문했다. 그런데 신한증권 직원이 김 여사에게 “이사님, (이 씨) 전화 왔어요”라며 “오늘도 도이치모터스 살게요. 2500원까지”라고 보고했다. 이에 김 여사는 “(이 씨가) 사라고 하던가요. 그럼 좀 사세요”라고 확인해줬고, 직원은 “그럼 어제처럼 천천히 사겠다”고 밝혔다.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사들이는데 있어 직접 전화주문을 넣거나, ‘선수’ 이 씨의 매수주문에 대해 직원의 확인 요청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동안 윤 대통령 측에서 내놓은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식 매매에 관여하지 않았고, 주가조작을 알지 못했다’는 반박과 맞지 않는 대목이다.
재판에서 공개된 증거와 수사기록들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검찰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 2년 넘게 수사 마침표를 찍지 않고 있다. 현재 김건희 여사 건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에서 담당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계속 수사가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변만을 반복했다.
한편 9월 5일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이원석 후보자는 총장직 공석이 된 100여 일 동안 총장 직무대행을 맡은 바 있다. 야권에선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검찰의 늦장 및 부실수사 논란을 추궁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