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직전 ‘판도라 뚜껑’ 열리나
▲ 김경준 씨 기획 입국설의 근거가 된 ‘가짜 편지’ 작성자 신명 씨.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여야가 사활을 걸고 있는 4·11 총선정국과 이 대통령의 최대 약점인 BBK 사건을 새로운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는 기획입국설의 실체 및 그 파괴력을 들여다봤다.
‘김경준 기획입국설’은 대선정국이었던 지난 2007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클린정치 위원장이 대선 엿새 전 ‘김경준 씨의 옥중 동료인 신경화 씨가 김경준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한 것이다. “자네(김경준)가 큰집(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암시)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가 공개된 이후 “BBK의 소유주는 이명박 후보”라고 주장한 김경준 씨는 기획입국설에 시달려야 했다.
▲ 신명 씨가 자필로 쓴 원본 편지. |
특히 신 씨는 조작 편지의 배후에 정권 실세와 이 대통령의 최측근 등 윗선이 있다고 주장해 파장을 예고했다. 실제로 신 씨는 지난해 4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정치공작에 철저히 이용당했다.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신 씨는 “5장으로 된 편지 조작 지시 문건이 있다. 문건들은 세 곳에 나누어 보관하고 있다. 그쪽(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 반응을 봐서 실명도 폭로할 것”이라며 매머드급 추가 폭로를 예고하기도 했다.
신 씨는 또 지난해 12월 7일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누가 시켰는지 말하지 않으면 수감 중인 형을 ‘원상 복귀’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며 “편지를 쓰라고 시킨 지인 양 씨가 여러 차례 ‘최시중 위원장이 통제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며 조작편지 배후자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거론하기도 했다. 신 씨는 지난해 12월 16일 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신기옥 씨가 지시를 했던 것”이라며 김윤옥 여사의 셋째 형부인 신기옥 씨 연루 의혹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명 씨는 끝내 ‘윗선’을 함구한 채 몇 달 전 미국으로 출국했다. 신 씨의 출국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기획입국 논란은 김경준 씨가 신 씨 형제를 고소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자신과 같은 미국 교도소에 있던 신경화 씨가 자신이 노무현 정권의 사주를 받고 귀국했다는 ‘가짜 편지’를 동생 신명 씨를 통해 만들어 명예를 훼손했다며 신 씨 형제와 배후를 처벌해 달라며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 씨의 고소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1월 10일 경 천안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 씨를 고소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것을 시작으로 1월 19일에는 신경화 씨도 조사했다. 이어 검찰은 2월 13일 기획입국설의 단초를 제공한 ‘가짜 편지’ 작성자 신명 씨에게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 검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소환통보를 받은 신 씨는 최근 검찰 소환에 응하는 것은 물론 구체적인 날짜에 가짜 편지 작성을 사주한 정권 실세 등 윗선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리고 신 씨는 3월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2007년 10월 나에게 원문을 보여 주며 가짜 편지를 쓰게 한 양승덕 실장이 그해 12월 대선이 끝난 뒤 검찰 조사 중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이번 일을 조정하고 있다’며 안심시켰다. 이 때문에 검찰 조사에서 양 실장과 말을 맞췄다”라고 말했다. 즉 ‘기획 입국설’은 한나라당이 청와대를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공작이며 이에 정권 실세가 깊숙이 관여했다는 기존의 주장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특히 신 씨는 사건과 관련 홍준표 후보 측에서 간접적으로 접촉해온 적이 있음을 폭로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같은 날 신 씨는 “홍 전 대표의 나경범 수석보좌관이 직접 사과하면 받아줄 수 있겠느냐는 메시지를 지인을 통해 전해왔다”라고 주장했다. 몇 달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신 씨는 “사과하려면 당사자인 홍 전 대표가 직접 해야지 왜 상관없는 보좌관이 하느냐. 그 사람에게 사과 받을 이유가 없기에 단호히 거절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홍 후보 측은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며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표명, 진실을 둘러싼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최근 양 실장이 언론을 통해 편지 조작 지시 혐의에 대해 부인하면서 사건은 점점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추가 폭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신 씨는 함구하고 있다. 약 보름 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신 씨는 “기자회견 전까지는 내용을 밝힐 수 없다. 사전에 외압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아나. 나로서는 어쨌든 홍 전 대표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귀국 여부와 상관없이 신 씨가 어떤 식으로든 폭로를 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향후 검찰 수사 및 신 씨의 ‘입’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신 씨가 디데이로 잡은 4월 5일은 여야 정치권이 사활을 걸고 경쟁하고 있는 총선 6일 전이라는 점에서 폭로의 진위 여부를 떠나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는 핵뇌관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기에 신 씨가 그동안 일부 언론을 통해 배후자로 지목한 정권 실세 등 윗선의 실명을 공개적으로 폭로할 경우 정치권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4월 총선정국 판세를 뒤흔들 핵뇌관으로 재부상한 BBK 시한폭탄이 언제 어떤 식으로 폭발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새롭게 부상한 BBK 뇌관은
이 대통령 ‘BBK 명함’ 또 등장
BBK 사건의 최대 쟁점은 BBK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BBK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와중에 이 대통령이 BBK 대표이사라고 밝힌 명함이 미국 법원에 소송 증거 자료로 제출됐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 씨는 ‘BBK투자자문회사 회장·대표이사 이명박’으로 명시된 명함이 다스와 김경준 씨 간의 미국 소송 과정에서 지난 2008년 8월 김 씨가 로스앤젤레스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명함은 왼편 상단에 ‘이명박 회장/대표이사’라고 한자로 인쇄돼 있으며 하단에는 주소와 함께 BBK투자자문주식회사, LKE뱅크, EBANK 증권주식회사라는 3개 회사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안 씨가 공개한 문제의 명함은 2007년 11월 BBK 논란 당시 이장춘 전 싱가포르 대사가 공개한 것과 같다는 점에서 더욱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명함에 이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던 동아시아연구원 전화번호가 가필돼 있다는 것이다. 안 씨는 “가필된 전화번호는 미국 등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기 쉽게 적어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는데, 이것이 사실일 경우 이 명함이 실제로 빈번하게 사용됐을 정황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당시 이 대통령 측은 이 명함에 대해 ‘위조 또는 사용하지 않고 폐기된 것’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 전 대사가 명함을 공개한 것에 이어 동일한 명함이 미국 법원에까지 제출된 것이 드러남에 따라 한동안 수그러들었던 의혹의 불씨가 되살아날 조짐마저 일고 있는 형국이다. [향]
이 대통령 ‘BBK 명함’ 또 등장
BBK 사건의 최대 쟁점은 BBK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BBK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와중에 이 대통령이 BBK 대표이사라고 밝힌 명함이 미국 법원에 소송 증거 자료로 제출됐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 씨는 ‘BBK투자자문회사 회장·대표이사 이명박’으로 명시된 명함이 다스와 김경준 씨 간의 미국 소송 과정에서 지난 2008년 8월 김 씨가 로스앤젤레스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명함은 왼편 상단에 ‘이명박 회장/대표이사’라고 한자로 인쇄돼 있으며 하단에는 주소와 함께 BBK투자자문주식회사, LKE뱅크, EBANK 증권주식회사라는 3개 회사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안 씨가 공개한 문제의 명함은 2007년 11월 BBK 논란 당시 이장춘 전 싱가포르 대사가 공개한 것과 같다는 점에서 더욱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명함에 이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던 동아시아연구원 전화번호가 가필돼 있다는 것이다. 안 씨는 “가필된 전화번호는 미국 등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기 쉽게 적어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는데, 이것이 사실일 경우 이 명함이 실제로 빈번하게 사용됐을 정황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당시 이 대통령 측은 이 명함에 대해 ‘위조 또는 사용하지 않고 폐기된 것’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 전 대사가 명함을 공개한 것에 이어 동일한 명함이 미국 법원에까지 제출된 것이 드러남에 따라 한동안 수그러들었던 의혹의 불씨가 되살아날 조짐마저 일고 있는 형국이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