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노조가 받은 제보와 학교 측 해명 엇갈려…저연차 불구 1학년 담임 자원? 학교측 설명 의구심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루머들
서이초 교사 A 씨(24)가 숨진 사실이 알려진 7월 19일, 이와 관련해 죽음의 전말이 모두 담긴 것처럼 보이는 긴 글이 한 대형 맘카페에 게시됐다. 이 작성자는 “교사 A 씨가 맡은 반이 1학기에만 두 번째 담임 교체가 있었다”며 “한 여학생 학부모가 직전 담임교사를 괴롭혀서 A 씨가 오게 됐는데 A 씨 역시 해당 학부모에게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학부모 가족이 3선 국회의원이라는 얘기가 있다. 서초 그랑OO아파트에 산다고 한다”며 “무려 3선 국회의원분 손녀랑 연관되다보니 교육청에서 기사 못 내게 막고, 그동안 변호사 선임해서 증거인멸, 합의 시도 중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글은 순식간에 온라인상으로 퍼져나갔으며, 방송인 김어준 씨도 가담했다. 7월 20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그는 “초등학교 교사 극단선택에 현직 정치인이 연루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며 “국민의힘 소속 3선으로 알고 있는데 전혀 보도가 없다. 곧 (국민의힘 의원의) 실명이 나올 것이고 대단한 파장이 있을 사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과 국민의힘 측은 즉각 반발했다. 한기호 의원은 입장문을 발표해 “손자, 손녀가 전부 4명인데 해당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없다. 여학생은 외손녀 1명으로 중학생”이라고 밝히며 허위사실임이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김어준 씨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서울경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할 예정이다.
학교 측도 입장문을 통해 온라인 상에 떠도는 루머에 대해 정정했다. 2023년 3월 1일 이후 A 씨 담당 학급의 담임교체 사실이 없었으며, A 씨의 담당 업무는 학교폭력이 아닌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권한 관리였다고 밝혔다. 또한 A 씨가 나이스 권한 관리 업무와 1학년 담임을 희망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어 해당 학급에서는 학교폭력 신고 사안이 없고, A 씨가 교육지원청을 방문한 적도 없으며, 정치인의 가족은 해당 학급에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허위사실이라는 게 드러나자 맘카페 게시자도 뒤늦게 “사실이 아니”라며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작성자는 “인터넷에 도는 이야기들 모아 정리해서 올린 건데 이렇게 많이 퍼질 줄 몰랐다”며 “학부모 가족이 국회의원일지도 모른다는 추정 글이 있어서 저도 그걸 올렸던 건데 사실이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고 정정했다. 세간에 화제가 됐던 긴 글은 인터넷에 도는 이야기들 모아 정리해서 올린 글, 다시 말해 루머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카의 억울한 죽음 원인 밝혀달라"
경찰은 7월 중순 학생들 사이 실랑이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학부모들과 접촉한 사실이 있지만 별다른 갈등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A 씨가 다른 곳도 아닌 교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원인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기에 유가족과 교사들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7월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교사노동조합,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족 대표로 참석한 A 씨의 외삼촌은 “교육 현장인 직장에서 생을 마쳤다는 것은 그만큼 알리고자 했던 뭔가가 있었다는 이야기 아니겠나”라며 “흔히 말하는 학부모의 갑질이 됐든 악성 민원이 됐든,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됐든 그것이 이번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저희 조카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학교의 교육 환경들, 잘못된 것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고쳐야 한다고 본다”며 “조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제2, 제3의 억울한 죽음이 학교에서 나오지 않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최근 서이초에서 근무했거나 근무 중인 교사들을 통해 제보 받은 내용을 7월 21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한 제보자는 A 씨의 학급 학생이 연필로 뒷자리에 앉은 학생의 이마를 긋는 사건이 있고 난 뒤,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학부모가 A 씨의 개인 휴대전화로 수십 통의 전화를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A 씨가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했는지 모르겠다. 소름 끼친다. 방학 후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야겠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제보자는 이마를 그었던 사건과 관련해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A 씨에게 “애들 케어를 어떻게 하는 거냐”, “당신은 교사 자격이 없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요즘 근황을 묻는 동료교사의 질문에 A 씨가 “지난해보다 10배 더 힘들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학급에서 발생했다고 알려진 학생 간 사안은 학교의 지원 하에 발생 다음날 마무리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서울교사노동조합은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그 사건’으로 인해 교사 A 씨가 힘겨워했다고 밝혔다. 반면 ‘학교의 지원’과 관련된 제보는 없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날 전망이다.
#“힘없는 교사에게 힘든 업무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만연했다는 의혹과 더불어 2년 차 교사인 A 씨에게 1학년 담임과 나이스 권한 관리를 맡긴 것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우선 경험이 부족한 저연차 교사가 1학년 학생들을 맡기기에는 교실을 제대로 운영하기가 힘들다는 의견이다.
조문하기 위해 서이초로 방문한 교사 B 씨는 “신입으로 들어온 1학년 학생들은 학생기록부 등 기록이 전혀 없기에 관리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경험이 많은 베테랑 교사들이 1학년 담임을 해야 한다”며 “학교 측은 A 씨가 자원해서 1학년 담임을 맡았다고 밝혔지만 대다수가 기피하는 1학년 담임을 자발적으로 했다는 것이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행정 중 나이스 권한 관리 업무가 학교폭력 다음으로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른 초등학교 교사 C 씨는 “힘든 행정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 그 교사에게 배려 차원에서 편안한 학급인 4~5학년을 배정해줘야 하는데 A 씨 입장에서는 업무 부담이 심했을 것”이라며 “최근 나이스가 4세대로 개편이 됐기에 스트레스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형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도 “학년이 낮을수록 학부모들 민원이 많아지기에 경력이 많고 학부모를 잘 상대하는 교사들이 저학년을 맡는 것이 정상”이라며 “교사들이 힘든 업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연차가 적고 힘없는 교사들에게 떠넘겨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인해 교사의 교육 활동이 침해되는 현상을 뿌리 뽑기 위해 학교와 교육 당국이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교원지위법과 시행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교육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장이 나서서 고유 권한을 행사하거나 문제행동 담당관을 배치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