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통’에 출결·성적 입력 어려움 예사…‘다른 학교 문항 출력’ 내신 시험 유출 날벼락
한 외국어고등학교 현직 교사 A 씨의 말이다. 6월 21일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쓰는 4세대 나이스가 약 2800억 원을 들여 개통됐다. 나이스는 쉽게 말해 학생의 성적과 생활기록부, 출결 정보 등을 인터넷에서 손쉽게 입력하고 확인하도록 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개통 첫날부터 시스템 불안정으로 비난이 쏟아졌다. 나이스는 교육행정에 한해서는 가장 중요한 서비스인데 이게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이번 나이스 사태를 두고 현장에서는 시기적으로나 오류 내용으로나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나이스 도입은 기말고사가 한창 진행 중인 6월 말 시작됐다. 학기가 한창인 이때 굳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한 고등학교 교사 B 씨는 도입 시기적으로 최악이라고 지적했다. B 씨는 “나이스는 모든 학생 생활기록부 전체를 보유하고 있고, 시험 문제 출제 등도 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새로운 세대로 개통할 때마다 나이스는 문제를 일으켰다”면서 “그런데 현재 학교가 바쁜 시기 중 하나인 1학기 기말고사가 직전일 때다. 시험 전에 평가 문항, 평가 기준, 정답, 배점 등이 기록된 ‘문항정보표’를 올려야 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새로운 나이스가 개통했는데 바로 먹통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일어난 가장 큰 문제는 내신 시험 정답 유출이었다. A 씨는 “나이스 오류로 시험 보기 전에 A 학교 시험 정답이 B 학교에서 출력이 됐다. 내신 정답 유출이라는 초유의 사태인데 이게 큰 논란이 안 되고 있다는 게 당황스러울 지경”이라며 “다행히 재직 중인 학교는 학사 일정이 빠른 편이 아니라 다행이지만, 부지런히 일했거나 학사일정이 빨랐던 학교는 시험 전체를 다시 내거나 하는 등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시험 정답 유출로 인한 대책으로 전국 시험 문제를 답지 번호 순서 변경, 필요한 경우 문항 순서 변경 등을 거쳐 재출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대해 현장에서는 즉각 반발이 나왔다. 수학 문제 같은 경우 그나마 번호만 바꾸면 되지만 국어 등 일부 문제는 번호를 바꾸려면 문제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어 현장의 고민이 크다고 한다.
다른 고등학교 교사 C 씨는 소셜미디어(SNS)에 “모의 수능 문제 하나 가지고 온 국민 앞에 허리 숙이는 교육부는 수십 만 교사들을 ‘뺑이’ 돌려놓고는 너희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공문 한 장 돌린 뒤 한 놈도 나와서 비는 놈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교사 D 씨도 소셜미디어에 “나이스 개통을 앞두고 연수 갔을 때 하필 기말고사 직전에 하는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지금도 늦어서 서둘러 한다는 거였다. 성적 처리 담당자도 하고 있어 영 불안했다”면서 “나이스 개통 전에 절대 성적과 관련된 어떤 것도 올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나이스도 에듀파인(지방교육 행·재정 통합 시스템)도 다 오류가 많았고 정착까지 시간이 걸렸으니 기말고사 일정이 급하더라도 나이스에 자료를 올리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이스 개발업체를 믿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적었다.
B 씨는 나이스 오류가 계속돼 대입 시즌까지 이어질 경우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B 씨는 “나이스 도입 이후 대입 수시 전형은 학교에서 따로 대학으로 학생부 등 기록물을 보내는 게 아니라 나이스를 통해 전산으로 넘어가게 돼 있다. 그런데 만약 나이스에서 오류가 생겨 일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자료 등이 넘어가지 않았고 이를 알아채지 못해 대학교에서 탈락하는 경우처럼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면서 “나이스는 그 정도로 중요한 시스템인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나이스 때문에 이미 끝낸 일을 또 하거나, 나이스가 느려 퇴근도 못 하는 교사도 많다”고 말했다. B 씨는 너무 느려진 나이스에 수행평가 점수를 입력할 수 없어 퇴근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도입 시기 외에 기능적으로도 말이 많았다. 출결 화면이 한 화면에 잡히지 않아 스크롤을 몇 번이나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한 3세대 나이스가 느려서 바꿔야 한다고 했는데, 이번에 도입한 4세대 나이스는 아예 먹통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4세대 지능형 나이스’라는 이름은 놀림거리로 전락했다. 죽을 사(死)를 쓴 ‘사세대 나이스’부터 ‘저능형 나이스’까지 다양한 별명이 생기고 있다.
애초 4세대 나이스를 두고 개발 입찰에 중소기업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4세대 나이스 개발 사업 초기 교육부는 4차례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대기업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나이스가 워낙 복잡하고 규모가 방대한 데다 민감 정보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과기부가 허락하지 않으면서 중소기업 컨소시엄이 개발했다.
이를 두고 IT 업계 관계자는 ‘누가 잘할지를 보는 대신, 중소기업이냐 대기업이냐를 봤던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 앱(애플리케이션)을 써도 오류가 많고, 불편한 인터페이스를 흔하게 경험해 볼 수 있다. 누가 잘할지를 판단하는 게 중요한데,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나누는 게 큰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1년 개발해 최근까지 사용했던 1세대부터 3세대 나이스는 대기업 계열사인 삼성SDS가 개발했다. 삼성SDS가 개발한 2011년 3세대 나이스가 도입됐을 당시에도 프로그램 오류로 약 2만 9000명의 학기말 성적을 수정하는 혼란이 일어났던 바 있다. 대기업이 해도 쉽지 않은 사업이었는데, 무턱대고 중소기업만 맡겨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게 잘못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A 씨는 오류 해결과 함께 나이스에 현장 교사 목소리가 좀 더 담겼으면 좋겠다는 뜻도 밝혔다. A 씨는 “현지 교사가 베타테스터도 아닌데 우리가 오류를 찾아 전달하는 지금 상황이 납득이 안 간다. 또한 개발진과 현장 교사 간의 간극이 커 필요한 기능이 반영되는 경우도 부족한 것 같다. 나이스 개발 시기에 현장 교사 목소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근 나이스 외에도 윤석열 정부는 교육과 관련해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사교육 문제, 킬러 문항, 평가원 등 다양한 논란이 교육계를 통해 불거지고 있다. 6월 27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런 혼란을 의식한 듯 국회 교육위원회에 참석해 “학교 현장에 혼란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책임감으로 마음이 무겁다”고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