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적당 많은 세대수, 세대당 적은 주차수 등이 평가기준상 유리…중대형 단지 주민 “사업성 배점 높여야”
이 주민은 △재건축 주민동의율 △주차난 정도(세대당 주차대수) △참여 세대수 등 주요 평가기준에서 소형 평형 위주 단지가 중대형 평형 위주 단지에 비해 유리한 구도가 됐다며 더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자체 평가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구역 통합재건축준비위원장 A 씨는 기자와 만나 “소형 평형이 많은 단지는 동일 면적당 세대 수가 상대적으로 많고, 그만큼 주차장은 더 부족하기 마련이어서 정부 표준평가기준상 더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하지만 일반적인 재건축 사업성 측면에선 세대당 대지지분이 큰 중대형 평형 단지가 더 나은 것이 상식인 점을 볼 때 정부의 이번 평가기준에 많은 의문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수도권 5개 1기 신도시에서 최근 통합재건축 ‘첫 타자’ 자리를 놓고 경합의 막이 올랐다. 국토부가 발표한 선도지구 표준평가기준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각 단지의 ‘소형 평형 비율’이 핵심 관건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재건축 사업성에 자신감이 있었던 중대형 평형 단지들이 평가기준상 불리함을 호소하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국토부의 ‘표준 평가기준’은 △주민동의율(60점) △세대당 주차대수(10점) △참여 단지수(10점) △참여 세대수(10점) △지자체 정성평가(10점) 등 총 100점의 기본항목과 1개 가점(5점) 항목(사업실현가능성)으로 구성됐다.
중대형 평형 단지의 일부 주민들은 10~20평대 소형 평형이 많은 단지일수록 재건축 투자 목적 소유주가 많아 짧은 시간에 높은 동의율을 확보하기 쉽고, 동일 면적당 세대수가 더 많은 점, 주차 가능 대수는 적은 점 등에서 선도지구 지정에 더 유리할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소형 평형 단지일수록 본래 재건축 시 부담해야 할 분담금이 커 소유주 간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큰 점도 짚으며 만약 선도지구로 지정됐다가 자칫 사업이 지연·좌초될 경우 정책적 의미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평촌신도시 중대형 평형 단지 주민은 안양시를 상대로 한 민원에서 “소형 평형 단지와 중대형 평형 단지가 각각 유리한 부분이 평가기준에 고르게 반영돼야 공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며 “재건축 사업 실현 가능성 항목 배점을 더 높이고, 예상되는 추가 분담금이 적을수록 가점을 부여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1기 신도시를 품은 경기도 5개시는 오는 6월 25일로 예정된 선도지구 공모 공고를 앞두고 정부 표준평가기준을 참고해 자체 평가기준안을 마련 중이다. 9월 중 공모 마감, 10월 중 평가를 거쳐 11월 중 선도지구를 선정해 경기도의 최종 승인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경기도 노후신도시 정비과 관계자는 “정부의 표준평가기준만 보면 소형 평형이 많은 단지가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정책 의도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며 “각 기초지자체가 지역별 상황을 고려해 평가 배점이나 비율을 다시 조정할 예정이어서 소형 평형 단지가 꼭 유리하다고 확정해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안양시 도시정비과 관계자는 “정부의 표준평가기준은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요소들로 추려 만든 것으로, 소형 평형 단지와 중대형 평형 단지의 유불리는 감안하지 않고 일단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들로 설정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세대당 주차대수 항목 같은 경우 소형 평형 위주 단지가 유리하다는 판단이 나올 수 있지만 현재 배점 비율이 가장 높게 설정된 주민동의율 항목은 사업성이 좋은 중대형 평형 단지가 더 유리할 수도 있어 어느 정도 형평성이 맞춰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소형 평형 비율이 높은 단지들은 중대형 평형 단지들의 문제 제기에 일부만 공감하는 분위기다. 평형 변수보다 ‘전체 세대수’ 요인이 주민동의율 등에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실제 경합을 벌여봐야 한다는 반응이다.
전체 2419세대 중 24평 이하 중소형 비율이 42%를 차지하는 성남 분당신도시의 한 단지 재건축추진위원장 B 씨는 “세대당 주차대수 항목에선 우리 단지가 유리할 수 있지만 옆 단지까지 포함한 통합구역 세대가 총 4200세대로 워낙 커, 소유주 동의서 징구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체급 차이가 큰 대단지와 중소 규모 단지가 함께 겨루는 것은 합리성이 떨어져 경쟁 판을 분리시켜줘야 맞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각 지자체가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정성평가 항목’을 최대한 활용해 결국 신도시 내 상징성이 큰 초역세권 대단지를 통합재건축 첫 타자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분당구지회 임원 C 씨는 “지자체들이 주도적으로 점수를 부여할 수 있는 추상적 항목을 활용해 평가 총점을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세대수가 많고 거주자 밀도가 높은 초역세권 대표 단지 몇 곳에 선도지구를 고르게 배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은 “선도지구 지정의 의미가 곧 정비사업을 빨리 진행할 수 있는 단지를 정하는 것이란 점에서 주민 동의율이 높은 단지에 많은 배점을 주려는 정책 취지는 일단 온당해 보인다”며 “다만 각 신도시의 전체 지구단위계획이나 미래 마스터플랜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표준평가기준이 설계된 것은 아니어서 안타깝고 우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