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권 보장’ 늘며 정치적 파장 큰 사건에도 적용…“판사들, 사회 혼란까지 감안한 정무적 감각 필요” 지적
내란 혐의로 구속됐던 윤석열 전 대통령도 구속 취소 되는 등 정치사건의 핵심 인물들이 잇따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자 법원의 판단이 달라졌다는 평도 나온다. 과거라면 ‘구속 상태’로 1심 선고가 나올 때까지 유지했을 법한 사건들에 대해 법원의 구속 취소나 보석 허가가 늘고 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을 수 있는 권리, 이른바 '피고인 방어권' 보장이 강화되는 추세에서 '예민한 사건'에서도 불구속 피고인들이 늘어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명태균 석방 결정 왜?
“어떤 먹잇감을 먼저 물고 뜯어야 그들이 열광하고 환호할까.” 명태균 씨가 석방된 뒤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명 씨는 자신을 갇혀 있던 굶주린 사자에 비유하며 ‘폭로전’을 시사했다. 명 씨는 “콜로세움 경기장 철창에 145일 갇혔던 굶주린 사자가 철창문이 열려 경기장 한복판에 뛰어나와 서 있다”며 “그 누구도 나에게 거짓을 강요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대선 판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명 씨가 폭로를 예고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명 씨 폭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보고 법원이 명 씨 석방을 결정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법조계에서는 ‘어차피 석방될 상황이었다’는 평이 나온다. 명 씨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은 지난해 11월 15일. 명 씨는 건강 문제 등 이유를 들어 12월 5일 보석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결국 지난 4월 9일 보석 석방했다.
구속만료 기한을 따진 결과라는 게 법조계에서 나오는 설명이다. 명 씨의 구속만료 기한은 오는 6월 2일인데 1심 선고는 빨라야 9월 말에나 가능하다. 6월까지 1심 선고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서기 때문에 남은 1심 기간 ‘불구속 재판’을 허가했다는 것이다. 명 씨와 함께 구속 수감된 김영선 전 의원도 9일 보석 허가를 받았으나 보증금 5000만 원 납입 조건을 처리하지 못해 석방이 하루 미뤄졌다.
재판부도 그냥 석방해 준 것은 아니다. 보석을 허가하면서 주거지 제한과 보증금 5000만 원 납입, 거주지 변경 시 허가 의무, 법원 소환 시 출석 의무, 증거인멸 금지 의무 등 조건을 걸었다.
형사 재판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최근 들어 ‘피고인 방어권’을 최우선적으로 판단하는 분위기가 생기다 보니 주가조작과 같은 경제 중대 범죄 사범이라고 하더라도 구속만료가 되는 6개월을 전후해 풀어주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언론이 주목하는 사건의 경우 피고인 방어권을 우선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를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에도 적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사건도 ‘촬영 불허’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도 비슷한 흐름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 재판이 4월 14일 본격 시작하지만 과거 대통령과 달리 윤 전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앉은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재판부가 고심 끝에 촬영을 불허했다.

과거 전직 대통령들의 사건이 촬영 허가를 받았던 것과 달라진 흐름이다. 1996년 전두환·노태우 씨가 내란죄 등으로 기소돼 법정에 섰을 때나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에서 재판부는 국민적 관심(공공의 이익)을 고려해 촬영을 허가했다.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서는 것도 이번에는 허가되지 않았다. 법원은 대통령경호처 요청을 받아들여 윤 전 대통령이 차량을 이용해 지하 주차장으로 진출입하는 것도 허가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전례나 검찰 출석 당시 포토라인에 섰던 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까지 종합하면 윤 전 대통령에게만 지나친 편의를 봐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피고인이 된 유력 정치인이나 힘이 있는 권력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며 “힘 있는 이들에게 ‘방어권’을 우선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법원이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불구속 재판’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가이드라인 이후 피고인의 방어권에 대한 중요도가 한층 더 높아진 것 같다”며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는 대원칙으로 보면 구속 취소나 석방이 적절한 선택인 것은 맞지만 석방된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발생할 사회적 혼란까지 고려해서 판단하는 정무적인 감각도 판사들에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조언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