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복 벗고도 잘나가더라
2월 18일 여의도에서 열린 노회찬 사면 촉구 서명운동. 전영기 기자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별관 15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검찰동우회 정기총회. 그 자리에서 검찰동우회장인 최경원 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스스로 개혁이 불가능한 조직’이라고 비난받는 현실에 검찰 구성원 모두가 한없이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쏟아지는 비판과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뼈를 도려내는 과감한 자기혁신과 의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을 주장한 최 전 장관은 지난 2005년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공개한 ‘안기부 삼성 X파일’에서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전해 받았다고 지목된 인물이다. 1997년 대선 전 도청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대화 내용에서 최 전 장관은 기본 떡값을 받는 목록에 있다며 실명이 언급된다.
1997년 당시 최 전 장관은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2001년 법무부 장관을 거쳐 2002년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들어가 현재까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기본 떡값 이외에 홍 회장이 직접 500만 원을 전달한 것으로 의심받은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 노 대표는 “김 전 차관이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1997년 대선 이후 대선자금수사를 담당하게 될 요직임을 감안해 특별대우를 받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안기부 삼성 X파일’ 녹취록이 공개됐을 때 법무부 차관을 지낸 김상희 씨는 이후 검찰을 떠나 ‘이명박 특검법’ 헌법소송 때 변호사로 소송 대리인을 맡기도 했다.
2000만 원을 떡값으로 받은 것으로 지목받은 김두희 전 법무부 장관은 1997년 당시 성균관대 이사를 맡고 있었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대검찰청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등 주요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2001년도에는 헌법재판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 검찰을 떠난 그는 ‘떡값검사’ 의혹 이후에도 언론중재위원으로 위촉되고, ‘삼성비자금 사건’ 변호사로 영입되고도 했다. 또한 2010년 제1기 로스쿨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로스쿨 평가를 주도한 그는 지난 1일 법조언론인클럽으로부터 ‘2012 올해의 법조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녹취록 상에서 실명은 등장하지 않고 서울지검장과 서울지검 2차장으로만 거론된 두 명. 노 대표는 이들이 안강민·김진환 변호사라고 주장했다.
안기부 X파일 명단이 허위사실이라고 노 대표를 검찰에 고소했던 안강민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1998년 대검찰청 형사부장검사로 재직하다 1999년 검사를 그만뒀다. 그는 2003년 제17대 총선의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 2007년 5월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국민검증위원회 위원을 거쳐 2008년 1월에는 제18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97년 당시 서울지검 2차장검사로 재직 중이던 김진환 전 서울지검 검사장은 2002년 서울지검 검사장을 지냈다. 이후 2004년 검사를 그만두고 법무법인 충정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며 대한공증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지난 2012년 2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부여·청양군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김근태 의원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홍 회장의 친동생으로 검찰 내 후배검사들에게 떡값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것으로 의심을 받은 홍석조 당시 서울지검 형사6부장. 그는 2003년 법무부 검찰국 국장을 거쳐 노회찬 대표가 녹취록을 공개한 2005년에는 광주고검 검사장을 지냈다. 그로부터 2년 후 법조계를 떠난 그는 보광훼미리마트 대표이사를 맡으며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2005년 노 대표가 ‘안기부 삼성 X파일’ 속 떡값검사의 실명을 공개하자 해당 검사들은 X파일 언급 내용에 대해 “삼성 측과 접촉한 적도, 돈을 받은 적도 없다”며 강력히 부인했다. 검찰 특별수사팀도 안기부 도청 녹취록에 드러난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 부회장, 홍 회장 및 떡값을 받았다는 검사들에 대해서 ‘혐의없음’ 또는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번 노 대표의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해당 관계자들은 일체의 언급을 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떡값검사로 지목됐던 7명은 사건 이후에도 결과적으로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며 “대법원 판결에 대해 그들이 반응을 보여 다시 주목받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직후 노 대표는 “불의가 이기고 정의가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7명 중 6명 사외이사로 이름 올려 법조계 출신 필수코스? 2005년 당시 ‘안기부 삼성 X파일’에서 ‘떡값 검사’로 지목된 검사들은 검찰 조사에서 모두 ‘혐의없음’ 또는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현재 그들은 모두 검사복을 벗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이력에는 공통점이 있다. 홍석조 전 광주고검 검사장을 제외한 모두는 기업의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2003년 검찰을 나온 한부환 전 법무부 차관은 지난 2005년 5월부터 2007년 5월까지 대우증권의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안강민 전 대검 형사부장검사는 2005년에서 2008년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두희 전 법무부 장관 역시 2010년부터 한국트로닉스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다. 두 개 이상의 그룹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한 이들도 있다. 김진환 전 서울지검 검사장은 GS그룹과 웅진씽크빅에서,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는 두산중공업과 LG전자, 효성그룹에서 사외이사로 일했다. 심지어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의 최경원 전 법무부 장관은 현대제철 사외이사로 선임된 직후인 2006년 회사 돈 797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변호인단에 참여해 논란이 됐다. 주주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사외이사가 불법 경영권 승계에 나선 재벌 일가를 변호하게 된 것. 대주주와 경영진의 독단적인 경영을 견제·감시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사외이사 제도가 오히려 회사의 비리를 변호하는 데 악용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50대 기업 사외이사의 평균 보수는 4300만 원 정도”라며 “법조계 출신들에게 사외이사는 정재계 인사들과 인맥도 쌓고, 돈도 받는 매력적인 부수입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동생인 홍 전 광주고검 검사장은 직접 대표이사로 나선 경우다. 그는 2006년 광주고검장을 끝으로 법조계를 떠난 뒤 2007년 3월 보광훼미리마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