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태재단 건물은 텅 비었지만 겉보기엔 그 ‘공허 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 ||
동교동 대로변에 우뚝 솟아 있는 아태재단의 다소 긴 영어 이름이다. 건물 전면을 유리로 시공해 언뜻 보기에는 고급 레스토랑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복 경찰들이 비어 있는 건물임에도 경비를 서고 있어 범상치 않은 곳임을 실감할 수 있다.
4백여 평의 재단 부지는 야당 시절 김 대통령을 감시하던 사찰 사옥 2채를 포함, 모두 4채를 매입해 조성했는데 땅값만 약 30억원이 들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 건물 신축 비용으로 약 50억원이 쓰여 전체 공사비는 약 8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아태재단의 한 관계자는 “신축비용은 은행에서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은 20억원과 재단 후원적립금 30억원 등으로 충당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렇게 빚을 내 어렵게 마련한 재단 건물은 그러나 최근 거의 3개월 동안 ‘흉가’처럼 방치되고 있다. 더욱이 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는 현재까지도 별다른 재단 운영 계획이 없어 건물의 앞날은 더욱 어두운 실정이다.
사실 아태재단은 지난 94년 1월 설립된 이래 97년 대선 전까지는 청와대 입성 ‘후방 기지’로서, 국민의 정부가 탄생한 뒤부터는 정권의 ‘싱크 탱크’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왔다.
하지만 아태재단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재단측은 지난 4월18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김 대통령 퇴임 때까지 잠정 활동중단을 선언했다. 문을 닫은 표면적인 이유는 재정문제였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김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 4명의 전곀痴 아태재단 간부가 비리 혐의와 연루돼 구속된 것이 치명타였다. 그리고 문을 닫은 지 40여 일 만에 재단 부이사장이던 김홍업씨마저 구속돼 지금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상태다.
▲ 현관쪽에서 바라본 아태재단과 공사중인 사저 전경 | ||
아태재단은 설립 초기 한때 60여 명의 임직원이 일했으나 지금은 관리원 한 명만이 남아 있다. 지난 5월1일 처음 문을 닫을 당시에는 보일러기사, 경비원, 서무 및 경리담당 직원 각 1명씩이 남아서 건물을 관리했지만 며칠이 지난 뒤에는 그나마 최소한의 잔류 직원들도 사표를 냈던 것.
이날 기자가 재단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건물 관리원은 우편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재단은 잠정폐쇄되었지만 통일부 등의 발신지가 적힌 우편물이 날마다 오고 있다고 한다. 이들 우편물은 뜯어보지도 않고 2층 자료실로 갖다 놓는다고 한다.
이 관리인은 건물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엔 사무실마다 창문도 열어두고 기본적인 청소도 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지금은 거의 손을 놓은 상태라고. 그는 “전기세만 2백만원이 넘게 나온다. 최소한의 전기만 써도 그렇게 나온다는 얘기다. 여러 가지 관리비를 합하면 한 달 4백만~5백만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지하에는 습기가 차서 냄새가 많이 난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점은 새 건물에 입주하자마자 여러 가지 사건들이 터져 아까운 건물이 썩어가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토로했다. 후원금만으로 운영되는 아태재단으로서는 여유자금이 넉넉지 않은 편. 그럼에도 빈집 관리에만 매달 수백만원을 지출하고 있고 또한 대통령 퇴임 때까지는 관리비 수천만원을 고스란히 날릴 판이다.
기자가 건물 밖으로 나오자 관리인의 불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단 문이 닫힌 뒤로 정문 바로 앞에 불법 주차하는 사례가 많다. 아태재단이 문을 닫은 것을 아는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정문 앞에 차를 세운다. 경고를 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