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 대한 관심

[일요신문] 1532년 스페인 군대가 잉카와 대치했을 때 잉카의 군대는 8만 명이었고 스페인 군사는 겨우 168명이었다. 그런 대제국 잉카가 어떻게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었을까. 바로 총 때문이었다. 나무곤봉이 훨씬 인간적일 수 있고, 돌팔매질이 훨씬 낭만적일 수 있지만 그것으로 총을 가지고 들어온 스페인 군대를 대적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스페인 군대는 천연두 균과 함께 왔다. 이방인들과 접촉한 원주민들은 천연두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고기를 즐기지 않았던 그들에겐 소에서 인간에게 전염된 천연두 균의 내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잉카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총, 균, 쇠>에 나오는 얘기다. 

700쪽도 넘는 빽빽한 인문학 서적 <총, 균, 쇠>가 요즘 갑자기 많이 팔리기 시작한 건 순전히 서울대 덕분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대출을 많이 한 도서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어쨌든 인문학 바람과 함께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이 성장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근대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온다. 서점에 가면 놀란다. 갑자기 사람들이 근대에 대한 관심이 이리 많았나 싶어서. 

1990년대에도 근대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해서였다. 그러니까 그때의 관심은 근대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근대의 종말과 관련된 관심이겠다. 현대사회에서 근대적인 것이 어떻게 해체되어가고 있는가, 하는 관심! 그렇다면 요즘 근대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볼 것인가. 그건 분명히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관심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대한 관심이었다면 근대에 대한 관심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1000년 동안 계속되었던 삶의 양식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시대에 대한 관심인 것은 아닐까. 매력적인 잉카문명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은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무기의 문제다. 근대라는 시기에 서구문명이 세계를 지배한 것은 서구문명이 매혹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무기가 강했고, 그들의 정신이 무자비했기 때문이다. 무자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아프리카로, 동양으로 건너와 오래된 문명을 누리며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배하며 함부로 할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가장 오만했던 표현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1세의 말이 아니었을까. 그 말은 이 세상을 다 줘도 바꾸지 않을 단 한 사람의 의미가 아니니까. 아무리 셰익스피어가 대단하다해도 그 말은 거대하고도 심오한 인도문명, 동양문명을 무시한 무식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사람들이 강자의 논리를 배우기 위해 근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살아남는 것밖에 없는 삶은 무섭고 징그럽다. 나는 기억하고 싶다. 근대 기술문명의 그늘에서 사라져간 문명들을. 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고, 잉카문명이고 검은 대륙 아프리카 문명이었다. 그리고 살아남기는 했지만 열강의 침략에 결국 나라를 잃어버려 팍팍한 삶을 살아내야 했던 우리 조상의 삶도. 

선한 자와 악한 자가 싸우면 강한 자가 이긴다. 그러나 싸우지 않고 살아야 할 때는 강한 것은 그저 울타리일 뿐, 삶의 내용은 강한 것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