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출 못하는 무능 정부… 세월호 참극을 보는 듯
지난 4월 15일, 나이지리아 북동부 보르노주 치복시에서 발생한 여중생 단체 납치 사건에 나이지리아 전역이 들끓고 있다. 무려 240명가량 되는 소녀들이 단체로 납치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아직 생사가 불분명한 가운데 ‘카메룬과 차드 등 인근 나라로 팔려갔다’는 소문까지 돌자 부모들의 억장은 무너지고 있는 상태. 소녀들을 납치한 것은 극우 이슬람 무장단체인 ‘보코 하람’이었다. 지난 2010년부터 테러와 납치를 자행하는 횟수가 급격히 늘면서 국제사회의 골칫덩어리로 떠오른 ‘보코 하람’은 신흥 알 카에다로 불리는 악명 높은 무장단체다.
나이지리아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에게 딸들을 납치당한 부모들이 4월 29일(현지시간) 수도 아부자에 모여 애통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4월 15일 밤. 치복 공립여자중학교 기숙사에서 잠자고 있던 300여 명의 여학생들은 한밤중에 들리는 총소리에서 잠에서 깼다. 인근 마을에서 들리는 듯한 총소리에 겁에 질려있던 여학생들은 곧이어 기숙사로 들이닥친 군복 차림의 한 무리의 남성들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하지만 곧 여학생들은 “우리는 군인이다.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는 남성들을 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무장 단체 보코 하람의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몸가짐을 조심하고 있던 여학생들은 이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남성들의 지시에 따라 건물 밖으로 나온 여학생들의 이런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여학생들이 모두 밖으로 나오자 건물에 불을 지른 남성들이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는 이들이 바로 보코 하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소녀들은 곧 테러범들의 명령에 따라 트럭 세 대에 나눠 올라타야 했으며, 그렇게 사라진 채 아직까지 실종된 상태로 남아있다. 실종된 소녀들 가운데 두 명은 독사에 물려 이미 목숨을 잃었으며, 또 스무 명가량은 병에 걸려 목숨이 위험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50명가량의 여학생들은 보코 하람 조직원들의 눈을 피해서 달리는 트럭에서 뛰어내려 탈출에 성공했다. 이렇게 해서 현재 실종된 여학생들 수는 243명 정도.
보코 하람의 납치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5월 7일에는 보르노주 와라베 마을과 왈라 마을에서도 11명을 추가로 납치했으며, 현재 나이지리아 정부를 상대로 몸값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납치된 여학생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현재 여학생들은 북동부에 위치한 삼비사 숲에 억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비사 숲은 미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여덟 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밀림이다.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았기 때문에 수풀이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자라 있으며, 원숭이, 영양, 코끼리, 타조, 독사 등 야생 동물이 많기 때문에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카메룬, 차드, 니제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지난 수백 년 동안 범죄자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카메룬으로 도주하는 길로 애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악마의 숲’으로 불리고 있는 삼비사 숲이 보코 하람의 은신처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이지리아 정부군에 비해 숲의 지형에 밝다는 점 또한 이들에게는 유리한 점이다. 나이지리아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키아리 모하메드는 “삼비사 숲은 열대우림이 아니다. 아마존도 아니다. 충분히 접근이 가능한 곳”이라면서도 “하지만 삼비사 숲에서 전투기나 헬리콥터를 이용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상에서 육탄전을 벌여야 한다. 이런 전투는 부상자가 생길 위험이 높다”라고 말했다.
보코 하람 무장단체들이 삼비사 숲에만 은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카메룬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근 산에도 흩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때문에 납치된 소녀들 역시 이미 숲이나 산 등 여러 곳으로 분산됐을 가능성도 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비사 숲에 억류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딸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애타게 바라는 부모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소문은 따로 있었다.
지난 5월 5일 보코 하람 지도자인 아부바카르 셰카우는 동영상을 통해 다음과 같은 끔찍한 주장을 했다. “내가 학교에서 소녀들을 납치했다”, “나는 알라의 뜻에 따라 소녀들을 팔 것이다”, “12세 소녀도, 9세 소녀도 모두 신부로 팔 것이다.”
트위터에는 소녀들의 무사귀환을 촉구하는 해시태그가 퍼지고 있다.
부족의 원로인 포고 비트루스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룬 국경 지역 주민들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납치된 여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국경을 넘어 카메룬과 차드의 보코 하람 조직원들에게 노예로 팔려간 것 같다.” 이들은 카누를 타고 강을 건넜으며, 일인당 2000나이라(약 1만 4000원)에 팔려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납치 사건은 사실 몇 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흔한 일이 됐다. 아마드 자나 지역 의원에 따르면 지난 4월 초에도 보르노주 콘두가에서 25명의 소녀들이 납치된 사건이 발생했었다. 납치되고 2~3일 후에 다른 곳으로 옮겨진 소녀들은 나이지리아 국경에서 15㎞ 떨어진 카메룬의 콜로파타로 끌려갔으며, 그곳에서 조직원들과 강제로 혼인식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의 한 남성은 무장단체 조직원 가운데 한 명이 “얼마 전에 장가를 갔다. 앞으로 콜로파타에서 살림을 차릴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벌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실종 학생들의 부모에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소극적인 수색작업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부모들은 소녀들이 납치된 지 며칠이 지나도록 정확한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무능한 정부를 향해 원망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 사건 발생 후 나이지리아 정부의 대응은 실망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납치된 학생들의 수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으며, 여태껏 이렇다 할 구출 작전은커녕 수색팀조차 제대로 꾸리지 못해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
사정이 이러자 정부를 못 믿겠다며 스스로 딸들을 찾아 나선 부모들도 있었다. 저마다 손에 검을 하나씩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삼비사 숲으로 향한 부모들은 하지만 숲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숲 인근의 마을 주민들의 만류 때문이었다. 어차피 숲으로 들어가봤자 무장한 테러범들의 총에 맞아 숨질 게 뻔하다는 것이었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에 이윽고 국제사회도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 프랑스, 영국, 중국 등은 나이지리아의 납치 사건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소녀들의 수색 작업에 적극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사건을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돕겠다”는 뜻을 비쳤다. 소셜미디어에서도 소녀들의 구조를 바라는 캠페인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트위터에는 소녀들의 무사귀환을 촉구하는 해시태그(#BringBackOurGirls, #BringBackOurDaughters)가 퍼지고 있으며, 이 해시태그는 일주일 만에 120만 회 리트윗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할리우드와 워싱턴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힐러리 클린턴, 크리스 브라운, 메리 제이 블라이즈 등도 트위터에 나이지리아 정부의 적극적인 수색 작업을 촉구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관심과 개입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으로 큰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번지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보코하람은 어떤 단체? “서방식 교육은 죄악” 여학생 타깃 테러 근 몇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가장 요주의 무장단체로 떠오른 보코 하람은 지난 2002년 나이지리아 북부 보르노주에서 처음 결성됐다. 2009년부터 점차 세력을 확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테러를 저질러왔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점차 테러 횟수가 잦아지고 있어 국제적인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보코 하람의 지도자 아부바카르 셰카우. 보코 하람이란 ‘서방식 교육은 죄악이다’란 뜻으로 나이지리아 북부 방언인 하우사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방식 교육을 하는 학교를 주된 테러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여학생들을 타깃으로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 이들이 여성들의 교육을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이슬람 율법 때문이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율법에 따르면 여성들은 학교에서 글을 배우기보다는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위해 내조를 해야 한다. 이들의 주된 목표 역시 오로지 순수하게 이슬람 율법에 의해서만 통치하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며, 바로 이런 이유에서 여성들을 납치한 후 노예로 팔아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납치된 여성들은 보코 하람 단체들에게 짐꾼, 요리사, 성노예로 팔리고 있다. 이들이 학교를 상대로만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도시와 마을에서도 폭탄 테러와 납치를 저지르고 있으며, 심지어 남학생과 남성들까지 무차별 공격을 퍼붓고 있다. 현재 보코 하람의 지도자는 아부바카르 셰카우란 인물이다. 셰카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2009년 당시 지도자였던 모하메드 유수프가 사망하면서 뒤를 이어 자리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현재 그의 목에는 미국 정부가 내건 현상금이 걸려 있다. 현상금 액수는 700만 달러(약 72억 원)며, 현재 보코 하람 조직원들과 함께 삼비사 숲에 은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