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서로 양이고 늑대인가
<양들의 낙원, 늑대 벌판 한가운데 있다>(나무의 숲)는 가장 선하고 연약한 존재라고 일컬어져 온 양들을 등장시켜 세상의 온갖 모순과 존재의 모든 허위의식을 들춰낸다. 제목이 상징하듯 양들은 ‘순하고 어린 양’의 모습으로는 결코 생존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성공회대 교수를 지낸 김의규 씨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양들의…>에는 길라잡이양, 사색양, 똑똑양, 미소양, 잘산양, 구린양, 일등양, 영웅양, 외톨이양 등 모두 50종류의 양들이 나서 하나씩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길라잡이양은 한 떼의 양들에게 낙원을 찾아준 양이 무리들의 요구로 자기 몫을 하나씩 양보하다 결국은 험준한 산으로 내쫓기며 “허허… 양들의 양심(羊心)하구선, 쯧쯧…”하고 중얼거린다는 이야기다.
온갖 경쟁을 이기고 부모의 바람대로 일등이 된 일등양은 “저는 일등보다 이등을 했으면 좋겠어요. 일등은 이등한테 밤낮으로 쫓긴다구요. 저는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쫓기는 거라구요”라고 하소연한다.
“욕망이란 채우고 나면 금방 없어지고 마는 것, 부질없는 것이지. 그러니 욕망에 가치를 둘 필요가 없소. 더욱이 그 때문에 자유롭지도 않은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욕된 삶이겠소”라는 선생양의 말을 들은 승냥이는 “그 때문에 부자유스러울 필요가 없다고?”라고 되뇌며 그 자리에서 양 한 마리를 물어가 버리고 그 소동 속에서 선생양은 턱을 채여 혀가 반쯤 끊어지고 만다.
들소와의 싸움에서도 이긴 영웅양은 자신과 겨룰 상대를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그러나 호랑이도 피해가는 이 영웅양에게 도전할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보다 두 배나 커 보이는 검은 양을 만나 거센 콧김을 내뿜으며 뿔을 겨누고 그대로 달려든다. 그러나 그것은 바위에 비친 자기 그림자였다. 벽처럼 선 큰 바위 밑엔 영웅양의 뿔이 몇조각으로 부서져 나뒹굴었다.
“우리 양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라고 묻는 살은양에게 늙은 양은 “살아서 살아있음을 모른다면 무엇으로 죽겠는고”라고 되묻는다.
이런 저런 양들이 등장하는 <양들의…>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만사 세상만사를 비꼰 우화집이다. 그러나 한편의 시와 같은 글 속에 날카로운 경구가 번득이는 이야기들은 우화를 넘어 자기 성찰의 계기를 던져 준다.
이규용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