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엄마를 속여? 거짓말은 성장 신호
동화 <피노키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진다는 사실이다. 사실 동화 전체를 보면 거짓말로 코가 길어지는 부분은 다른 모험에 비해 비중이 크지 않다. 그럼에도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인 것은 코가 길어지며 거짓말 탐지기 역할을 한다는 독특한 발상, 그리고 피노키오의 거짓말 때문에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피노키오>는 얼핏 ‘거짓말하지 않는 착한 사람이 되자’라는 교훈적인 내용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보면 거짓말로 시작된 부모와 아이 사이의 갈등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페토 할아버지가 추운 날씨에 자기 옷을 팔아 책을 사서 피노키오를 학교에 보낸 것처럼 많은 부모들이 온갖 정성으로 아이를 키운다. 그러다가 피노키오가 유혹에 이끌려 거짓말로 위기에 빠지며 세상을 떠돌게 된 것처럼, 내 아이 또한 그러한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거짓말을 하면 훈육에 대한 고민과 함께 ‘저게 벌써부터 나를 속이려고 하네…’라는 배신감을 느낀다. 이런 배신감은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급기야 적절한 훈육의 선을 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에게 심각한 죄책감을 심어줄 수 있다. 하지만 만일 피노키오가 애초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 순종적인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자신을 깨닫는 모험을 시도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피노키오가 거짓말로 성장 기회를 가졌듯 아이의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려면 지능 발달이나 사회성, 심지어 표정 연기까지 여러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연령에 적절하고 타인에게 해를 주는 거짓말이 아니라면 무조건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보기보다 자연스런 성장 신호로 인정할 필요도 있다.
거짓말을 할 만큼 크다니! 거짓말의 발달사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단순한 거짓말 안에는 기억력과 공감능력, 통제력, 언어표현력 등 다양한 능력이 담겨 있다. 먼저 자기가 어떤 일을 잘못했는지, 혹은 지키지 못한 약속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기억해야 그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속인 내용을 상대방이 믿을 것이라는 것, 즉 상대의 마음을 짐작해 읽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거짓말로 속이려는 내용을 참고 말하지 않는 통제력도 필요하다.
아이들의 거짓말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도 많다. 3~5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장난감을 갖고 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놓고도, 금세 그 장난감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실수를 했다. 이는 언어억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 반면에 6~7세 아이들은 장난감 이름을 말하지 않아 거짓말의 성공률이 높았다.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지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거짓말을 할 때 특정한 행동을 보인다. 엄마의 눈을 피하거나 얼굴이 빨개지며 손을 꼼지락거리는 행동 등이 대표적.
이 때문에 쉽게 거짓말을 들키곤 한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연령이 높아지며 사라지고 점점 표정 연기도 늘어간다. 또한 거짓말과 관련된 능력은 뇌 발달과도 연관이 있다. 뇌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전두엽이 발달하면 거짓말에 필요한 조절과 통제력, 기억력과 판단력, 공감 능력도 함께 성장을 보인다. 따라서 연령에 따라 거짓말의 양상과 성공률도 다르고 같은 연령이라도 개인차가 크다.
2세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가상 놀이를 한다
거짓말을 언제 처음 시작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연구자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 만 7세가 되어야 의도를 갖고 속이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학자도 있고, 만 2세 전부터 속이는 행동이나 거짓말이 나타난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만 2세 전후에 참과 거짓을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데는 모두 동의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아직 말로 속이는 것보다는 놀이에서 ‘~하는 척’하는 행동을 가장 많이 보인다. 일종의 귀여운 속임수로 장난감 음식을 맛있게 먹는 척하기도 하고, 손을 귀에 대고 전화를 받는 척하는 등 행동이 대표적이다.
3~4세 자기방어와 선의를 위한 거짓말을 한다
연구자들마다 의견이 다르기는 하나 대략 만 3세가 되면 의도를 갖고 남을 속이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때는 속이기 위한 의도가 있기는 하지만 야단맞는 상황을 피하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 대부분이다. 또한 아직 능숙하지는 않지만 좋은 관계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도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연구에서 실험자가 자기 코에 립스틱을 묻히고 만 3세 아이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봤다. 상당수 아이들이 실험자에게 “괜찮아 보인다”고 말하였지만, 이후에 다른 사람이 물어봤을 때는 사실대로 “코에 묻은 자국이 보기 싫었다”고 답했다. 4세 아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선의의 거짓말을 한 주인공과 일반적인 거짓말을 한 주인공을 다르게 평가했다. 이런 실험을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주변의 분위기나 상대의 기분에 민감하고 영향을 받을지 짐작할 수 있다.
5~6세 거짓말이 정교해지고 재미를 위해 과장한다
만 5세 무렵이 되면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상황에 따라 거짓말도 정교해진다. 또한 장난기가 많아지면서 사실을 과장하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표현력이 좋아지는 시기라 엄마가 아이의 거짓말에 깜빡 속아 넘어가기도 쉽다. 상상력과 유머가 결합해 “도둑이 훔쳐갔어” 식의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선의의 거짓말도 느는데, 원치 않는 선물을 주고 반응을 보는 실험을 한 결과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볼 수 있다. 실험자가 아이들에게 원하지 않는 선물을 주고 마음에 드는지 묻자 대략 68% 아이들이 실제로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겉으로는 좋다고 거짓말을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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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황선영 기자 / 글 김이경(육아 칼럼니스트) / 사진 이성우 / 모델 엘레인(5세) / 도움말 김미연(길아동청소년상담 센터 소장), 박소연(서울주니어상담센터 놀이치료사) / 의상협찬 유니클로(02-3442-3012), 퓨처퍼펙트(070-42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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