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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A시장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농협중앙회 건물 전경. 왼쪽은 임종룡 회장 합성사진.
지난 2012년 3월 이른바 신·경분리(금융 등 신용사업과 유통·판매 등 경제사업 분리) 이후 농협은 대외적으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경분리 과정에서 정부 지원금 문제로 시끄러웠으며 농협금융지주 출범 이후 불과 석 달 만에 신충식 회장이 사임하는 등 내홍도 겪었다. 신경분리 직후인 2012년 6월 금호종금 인수전의 유력 후보 중 하나로 부상했으나 당시 농협 측은 “인수전에 불참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신경분리 이후 2년 동안 잠잠했던 농협이 최근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큰손으로 떠오르며 농협이 영위하는 사업과 관련 있는 매물이 나오면 유력 인수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고 있다. 그 시작은 지난 6월 우리투자증권과 NH저축은행(옛 우리금융저축은행), 우리아비바생명보험 인수였다. 옛 우리금융지주의 분할매각 민영화 방안에 따라 시장에 나온 매물로 인수가는 1조 원. 더욱이 강력한 경쟁자였던 KB금융지주를 누르고 인수해 금융권 일부에서는 농협금융의 힘에 놀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농협금융은 우리투자증권계열 3개사를 인수하면서 자산이 313조 원(신탁·권리자산 제외)으로 껑충 뛰어 신한금융에 이어 자산규모 2위 금융그룹에 올랐다. 지난 3분기 기준 우리투자증권 자산은 34조 원이며 우리아비바생명은 4조 7000억 원, NH저축은행은 6900억 원이다. 지난 12월 24일 KB금융의 LIG손해보험 인수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승인이 나면서 금융지주 자산 순위는 다시 바뀔 전망이다.
농협금융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자산운용사 M&A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직접 자산운용 역량을 강화하고 자산운용을 농협금융의 핵심으로 육성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자산운용 관련 M&A도 적극 추진할 것임을 알렸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인수할 만한 자산운용사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관련 분야를 계속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금융부문뿐만이 아니다. 농협의 또 다른 축인 유통·판매 분야의 사냥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9월 농협은 농협경제지주를 통해 종자업체 농우바이오 지분 52.8%를 2834억 원에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농협의 막강 네트워크, 남해화학의 비료사업과 연계돼 농우바이오 인수 시너지 효과는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종자사업은 워낙 까다로운 데다 연구개발과 일관성이 중요한데, 농협이 과연 그런 쪽까지 신경 쓸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농협 경제사업부문은 최근 택배업체와 홈플러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지난 12월 15일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제7 홈쇼핑사업에는 이미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제7 홈쇼핑 자본금 800억 원 중 360억 원을 출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
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설은 이미 수년 전부터 택배업계를 긴장시켜온 사안이다. 2010년에도 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설이 업계를 달궜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물류사업은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며 “톱3 정도만 괜찮고 중소업체들은 겨우 연명하는 판에 엄청난 농협 물동량을 농협이 직접 가져간다면 중소업체들은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반발했다. 이 같은 이유로 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은 번번이 무산됐으나 최근에는 꽤 구체적인 검토 단계까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제7 홈쇼핑 사업까지 따낸다면 농산물과 홈쇼핑·택배 등으로 이어지는 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택배회사들이 토·일요일(공휴일)에 영업을 하지 않다보니 신선함을 유지해야 하는 농산물의 가치가 떨어져 농민들의 불만이 많다”며 “농협물류 쪽에서 사업을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낼 단계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홈쇼핑사업은 진작부터 직접 하려 했다”면서 “예전에 기회가 한 번 있었으나 하지 못한 것을 내부적으로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농협의 사업확장은 매각설에 휩싸여 있는 홈플러스에도 미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홈플러스 매각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데 강력한 인수 후보로 농협이 거론되고 있는 것. 유통업계 관계자는 “농산물 비중이 50%가 넘으면 대형마트 규제를 받지 않는다”며 “농협이 홈플러스를 인수한다면 규제를 피하면서 하나로마트와 함께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 12월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CEO서밋’에서 “홈플러스는 농협이 인수하는 것이 가장 맞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인수전과 관련해 특정 기업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현재 유통업체들은 인수 여력이 없는 데다 홈플러스가 부분 매각하려는 곳에 이미 진출해 있는 상태여서 농협을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농협 역시 여력이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설사 부분 매각일지라도 사업구조개편을 하는 과정에서 실탄을 많이 소모한 탓에 자금 여력이 없다”며 “차입 경영을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홈플러스 인수설을 부인했다. 이 대목에서 농협의 신용사업부문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자금조달 관련 질문에 농협금융 관계자는 “자기 돈으로 M&A에 나서는 곳이 있느냐”고 되물으며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앞으로도 M&A에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내비쳤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 기준 농협은 자산 40조 8000억 원에 32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13위에 올라 있다. 공기업을 제외하면 9위로 한진그룹과 한화그룹보다 높은 위치다. 2014년 한 해 왕성한 식욕을 보인 농협의 새해 자산이 얼마나 불어났을지 궁금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