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협상·상법개정안 등 정부·국회의 현안 처리 주시…노동계와의 관계도 넘어야 할 산
#불확실성 해소될까
12·3 비상계엄 이후 재계에는 한동안 어두운 기운이 감돌았다. 정치권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국내 주요 산업 전망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환율이 상승하고, 투자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는 원자재 수입과 신사업 투자에 치명적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수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정문영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지난 12월 6일 보고서를 통해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요인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확대된 점은 부담요인”이라며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민간소비 회복과 설비투자 증가가 크지 않고,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주요국의 경기둔화·저성장으로 수출증가율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치 불확실성 장기화 여부에 따라 시장의 불안심리는 확대될 여지가 있다”며 “정치 일정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는 점은 정치 불확실성 해소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지난 12월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헌법재판소(헌재)는 탄핵소추안의 적법성을 심사할 예정이다. 헌재는 탄핵 사건 접수 후 180일 내에 결론을 내야 한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대통령 탄핵 사건 심사가 100일을 넘어간 적은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 접수 후 결론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각각 63일, 91일이다. 따라서 내년 3월까지는 윤 대통령 탄핵이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 탄핵이 확정되면 5월께 대선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궐위시 60일 이내에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일정이 윤곽이 잡힌 만큼 정치적 불확실성도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보는 분위기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헌재 결정을 기다리는 기간에 접어들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존 우즈 롬바르오디예은행 최고투자책임자(CIO)는 CNBC 인터뷰에서 “한국의 정치적 배경을 둘러싼 변동성은 우리가 매우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확실히 게임의 마지막에 온 것으로 보이며 내년 1분기께 끝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분석했다.
#재계 표정 밝지 않은 이유는?
그럼에도 재계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내년 1분기까지는 원활한 국정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당장 대미 협상에도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한국은 미국과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의 현안을 논의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내년 1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는 “정부와 국회는 안보와 경제 불안, 사회적 갈등 확산, 일체의 정책 혼선에 선제적으로 철저히 대처해 대통령 탄핵 의결 이후 자칫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완화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며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외환 및 금융시장의 동요를 방지하고, 차질 없는 예산 집행을 통해 경제, 산업 각 분야의 활발하고 지속적인 가동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도 주목하고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주주의 권익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 사장단은 지난 11월 성명을 통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많은 기업들은 소송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시달려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고,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상당한 애로를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재계에서는 얼마전까지만해도 상법 개정안이 철회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민주당이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면서 친자본주의 행보를 보인다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법안은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겠다면서 약속한 상법 개정안은 유야무야시키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이중적인 행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 퇴진 후에 들어설 정권도 부자감세와 재벌친화적인 정책을 계승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시민들이 우려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후 상황이 달라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민주당은 조기 대선이 이뤄진다면 승리 가능성이 매우 높아 예전만큼 시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며 “큰 무리수만 두지 않으면 소신대로 밀고 나가도 큰 문제가 없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계와 노동계의 갈등도 넘어야 할 산이다. 비상계엄 이후 노동계는 일제히 파업에 나섰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은 지난 12월 11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금속노조 산하에는 현대자동차, 기아, HD현대중공업, 현대제철 등 다수의 대기업 계열사가 소속돼 있다. 물론 금속노조 산하 지부 모두가 파업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파업 확산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파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는 탄핵안 가결 후 “금속 노동자의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을 뿐, 아직 처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누구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며 “흔들린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많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남겨졌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입장문을 통해 “국회는 현명하고 조속한 사태 수습을 위해 초당적 차원에서 여·야 협치의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촉구한다”며 “노동계도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경제주체로서 사회 안정과 경제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어려운 분위기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경제 협회 차원의 입장문 외에는 익명이라도 섣부르게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민들의 분노가 높은 상황에서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어떤 나비효과로 돌아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