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짜 맞던 ‘독감약’ 귀한 몸 될 줄이야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스페인 간호사가 아비간을 투여 받은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 사진출처=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이렇듯 사상 최악의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로, 일본 후지필름 산하 도야마화학이 개발한 ‘아비간’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일본 대중지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스페인 간호사가 아비간을 투여 받은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아비간은 임상시험에 착수, 세계 첫 에볼라 치료제로서 승인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신약 개발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과정에는 무려 16년에 걸친 고군분투가 있었다. 일본의 에볼라 신약 개발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야기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야마화학 연구자들은 수없는 실험을 반복하고 있었다. ‘인플루엔자(독감) 치료에 쓰이는 새로운 항바이러스제를 만들어라.’ 이것이 10명도 안 되는 연구팀에 주어진 임무였다. 그렇다고 윤택한 연구자금이 지원되는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대형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할 경우, 자동화된 설비를 통해 치료제로서의 화합물을 찾아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당시 도야마화학은 지방도시의 중견 제약업체에 불과해 그런 시스템을 갖추기란 애초 무리였다.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2만 6000여 종류의 화합물을 랜덤으로 골라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 독감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지 시험해갔다. 일주일에 600개씩, 2만 번 이상의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야 우연히 현재의 아비간으로 이어지는 항바이러스제 ‘T-705’를 발견한다. 1998년의 일이었다.
실험 중 독감에 감염된 생쥐에게 T-705를 투여한 결과, 단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유효성을 확인한 도야마화학은 2000년 9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학회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그러나 학회발표는 예상보다 별다른 화제가 되지 못했다. 세계 대형 제약회사에 제품화를 제안했다가 모두 거절당하기도 했다. 대체 왜일까.
이유는 때마침 독감치료제로 ‘타미플루’와 ‘리렌자’가 발매됐기 때문이다. 당시 제약 관계자들에게는 “더 이상 새로운 독감치료제는 필요 없다”고 여겨졌던 것. 수지타산을 맞춰야 하는 제약업계의 사정도 원인이었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장기 복용이 가능한 약을 개발하는 편이 이익이다. 가령 당뇨병, 심장병, 고혈압에 좋은 약은 평생 복용해야 하므로 큰 매출액이 기대된다. 반면 독감약은 길어도 1주일. 전자에 비해 확실히 이익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도야마화학의 T-705가 획기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기존 치료제와 달리 내성이 생기지 않고 바이러스 복제 자체를 직접 막는다는 데 있다. 사진출처=도야마화학 홈페이지
조류독감에 걸려 사망자가 속출하자 세계 각국의 의료기관들은 유효한 약이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6년 3월, 미국 유타주립대학이 “T-705가 조류독감 등 폭넓은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한다. 자신들이 연구한 약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개발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연구진의 사명일 터. 하지만 도야마화학은 또 한 번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사실 제약업계는 거액의 돈이 움직이는 사업으로, 사명감만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T-705의 본격적인 임상시험을 진행하던 2007년. 도야마화학은 계속된 적자로 큰 위기를 맞는다. 이때 손을 내민 것이 후지필름이었다. 1400억 엔(약 1조 3000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도야마화학을 인수한 것이다.
여기서 문득, 의아함이 든다. 사진용 필름으로 알려진 회사가 왜 의약품 사업에 뛰어들었을까. 당시 후지필름은 디지털카메라에 밀려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는데, 제2 도약을 위해 적극적인 사업 변신을 꾀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헬스케어 분야였던 것. 특히 도야마화학을 인수한 까닭은 독감과 알츠하이머 치료제 등 유력한 신약 후보를 보유할 만큼 개발력이 뛰어나다는 점이 컸다. 이렇게 자금문제를 해결한 도야마화학은 임상시험을 진행할 든든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은 ‘아비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발견으로부터 16년. 오랜 고투 끝에 얻어낸 성과였다. 지난해 8월, 전 세계가 에볼라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미국 국방부는 에볼라 치료제 후보로 아비간을 거론했다. 덧붙여 “아비간의 동물실험이 끝나면 신속하게 사용 승인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입장도 내놓았다.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에서는 승인 전 긴급조치로 4명의 에볼라 환자에게 아비간을 투여해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기도 했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환자를 돌보다 에볼라에 감염된 여성간호사가 아비간 투여를 받고 완치된 사례가 나왔다. 향후에도 아비간은 에볼라로부터 많은 목숨을 구할 것으로 기대된다.
손쓸 틈도 없이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았던 환자들에게 ‘신약 개발’ 소식은 그야말로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발견은 우연이었다. 그러나 의료 관계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번은 제품화를 포기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난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념으로 일군 ‘신약 아비간’이 이제 열매를 맺으려 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