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치질’ 연기로 의사까지 속였다
▲ 이낙성. | ||
이낙성의 행방을 뒤쫓고 있는 경찰은 현재 당혹감에 빠져 있다. 당초 경찰은 “그는 신창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단순 잡범”이라며 “치질도 심각해서 곧 잡힐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오판이었다. 현재 이낙성은 자신의 신분을 일체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은둔해 있다.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 결과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낙성의 치질은 그다지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탈주 당시 그의 상태는 생활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수술을 핑계로 외부 병원에 갈 수 있었을까.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 그의 행방을 좇고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해외 밀항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고 있다.
자칫 그의 탈주극은 영구 미제에 빠질 우려마저 낳고 있다. 경찰은 그저 ‘시민들의 제보’만 기다리며 속수무책인 형편이다.
▲ 이낙성 변장 모습. | ||
기자는 탐문 끝에 현재 이낙성의 행방에 대해서 가장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알려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아무개 형사를 만났다. 그는 현재 이낙성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답게 새로운 사실들을 내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현재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 잘못 알려진 부분이었다. 그는 탈주 당시 심한 치질을 앓고 있어서 수술이 시급하며, 이것이 도피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따라서 경찰은 그가 치료 또는 약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고 치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병원과 약국 등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4기의 중증 치질환자로 알려진 그의 진단 결과가 실제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 김 형사는 “사실 그것은 정확하게 알려진 정보가 아니며, 그가 교활하게 탈주를 위한 꾀병을 부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항문질환은 치질과 치루로 나뉘는데 이낙성은 치루였다. 치루는 좌욕 등 관리만 잘하면 낫는 질환으로 특별한 약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낙성의 탈출은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으로 보이며, 일부러 교도관들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걸음걸이가 불편한 것처럼 중증 환자 행세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의 행방에 대해 현재 경찰은 세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최근에 부쩍 거론되는 것이 해외 밀항 가능성이다. 일각에서는 머리 깎고 산속 이름 없는 사찰로 들어갔거나, 산발한 채 노숙자 행세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성 제보도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망했거나 자살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경찰이 해외도피 가능성을 가장 먼저 거론하는 것이 눈에 띈다. 당초 그의 전력이나 능력을 봤을 때 해외도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종전의 입장을 바꾼 셈이다. 경찰이 입장을 바꾼 이유는 그의 탈주를 도운 것으로 알려진 옛 감방동기 엄아무개씨(38)의 존재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엄씨는 탈주해 서울로 올라온 이낙성에게 옷과 약간의 돈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엄씨가 이처럼 드러난 것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그를 도왔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김 형사는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심증으로는 나름대로 어떤 확신을 갖고 있지만 솔직히 딱히 증거가 없다”라면서도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낙성의 주변을 조사해 본 결과 그가 해외로 도피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은 말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