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로 ‘꽁꽁’ 얼어붙은 도시 외출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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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장영석 기자 | ||
천안이 공포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에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 공포에 떨어야 했던 천안 시민들은 해가 바뀌기 무섭게 정월 한 달 동안만 네 건의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아예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심정이다.
올 초 연쇄 살인의 하나로 보이는 모 대학 경리부장 피살 사건(<일요신문> 714호)을 시작으로 지난 1월10일에는 주택가 쓰레기통에서 한 50대 여성의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된 데 이어 14일에는 풍세면 신설도로 공사현장에서 20대 여성이 불에 탄 변사체로, 일주일 후 같은 장소에서 다시 얼굴과 목이 테이프로 감긴 채 질식사한 여성이 발견됐다. 더구나 무서운 것은 최근 숨진 두 여성이 동일범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진 것.
경찰은 이 두 여성이 지난 12일 ‘하나 상사’라는 유령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 사실을 확인했고 용의자들이 이들의 구직 서류를 이용해 대출을 받으려한 정황까지 포착했다. 이번 사건은 용의자들과 접촉한 여성이 10여 명이나 된다는 점에서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충격과 불안 또한 엄청날 수밖에 없다.
지난 14일 천안시 풍세면 신설도로 공사현장. 인적이 거의 없는 지하 터널 안에서 불에 탄 변사체가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소사(燒死). 늑골 아래 부분에 날카롭고 뾰족한 것에 찔린 상처가 있었지만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었다. 경찰 수사 결과, 사체의 신원은 이틀 전 면접을 보러 간다며 집을 나간 후 실종된 표아무개씨(26).
이때만 해도 경찰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표씨가 구인광고를 보고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하나상사’는 경찰 수사 결과,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유령회사’로 밝혀졌고 용의자들이 사용한 휴대전화도 ‘대포폰’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사건을 수사하던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한 결과, 용의자들과 통화한 여성이 10여 명이나 됐고 이 중 한 명이 표씨와 같은 날 면접을 보러 나간 뒤 연락이 끊긴 사실을 알고 사태가 심각함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표씨와 같은 날 실종된 것으로 알려지며 뒤늦게 수사 대상이 된 송아무개씨(26)는 결국 6일 뒤인 20일 표씨가 불에 탄 변사체로 발견된 지점에서 불과 50여m 떨어진 논두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비닐하우스용 보온 덮개로 덮여 있던 송씨의 사체는 목과 얼굴이 테이프로 감겨있었고 부검 결과 질식사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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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시 풍세면의 신설도로 공사현장. 면접을 보러 나간 20대 여성 두 명이 이곳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 ||
“수원의 한 대형 할인마트로 휴대폰을 배달했다”는 택배회사 직원은 용의자에 대해 “키가 작은 30대 중반의 남자”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또 지난 12일 집을 나간 표씨의 차가 천안의 한 할인마트 주차장에서 발견됨에 따라 표씨가 이곳에서 용의자들을 만난 것으로 보고 폐쇄회로 TV화면을 분석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해 왔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몸에 불을 지르고 얼굴과 목을 테이프로 감아 질식사 시킨 범인들은 도대체 어떤 목적에서 이같이 잔인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이번 사건을 담담했던 경찰은 수사 내내 말을 아꼈지만, 용의자들이 숨진 두 여성이 면접을 위해 준비해 온 서류를 이용해 대출을 받으려한 정황을 잡고 목격자와 제보자를 상대로 수사력을 집중해 왔다.
경찰은 그러나 용의자들이 대출에 성공했는지 여부와 이 여성들을 직접 내세워 대출을 받았는지, 대출을 시도한 곳이 은행과 같은 제도금융권인지, 사채업자인지에 대해서는 수사비밀이라며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애초 “두 여성 모두 인감증명서는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경찰 관계자의 말과 함께 구직에 필요한 서류가 한정돼 있는 만큼 용의자들은 사채업자에게 대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용의자들이 범죄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던진 미끼는 ‘취업’. 최근 취업 사정이 어려운 탓일까.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10일 한 지역정보지에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20대 여성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고 12일 오후 5시간 간격으로 표씨와 송씨를 만난 뒤 전화를 끊었고 매체에서도 연락이 되지 않자 자체적으로 광고를 내렸다고 한다.
그 사이 취업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한 여성은 10여 명. 그러나 표씨와 송씨를 제외한 나머지 여성들은 용의자들로부터 ‘나이가 많다’, ‘조건이 안 맞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당해 면접까지는 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숨진 두 여성과 비슷한 조건의 구직자가 더 있었다면, 피해자는 더 늘어났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용의자들과 접촉했던 여성들은 물론 사건 담당자들의 등골까지 서늘하게 만든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