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이들
▲ 지난 13일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긴 이은영 박동은 양(왼쪽부터). 부모들이 애타게 찾고 있다. | ||
이튿날 새벽 2시경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으나 경찰은 “단순 가출일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며 특유의 늑장 대응을 또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 대응이 늦었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경찰 측도 이를 인정하며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재 경찰은 양산은 물론 부산 경남 지역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철저한 수색을 벌이고 있지만 아무런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실종 사건의 경우 대개 목격자 제보가 잇따르고 뭔가 하나 실종자의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이번 사건은 정말 답답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며 여전히 가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한 모습이다. 가출이라기엔 상황이 석연치 않고 실종이라기엔 전혀 단서도 없고 목격자 신고도 없기 때문이다.
실종된 은영 양과 동은 양은 평소 아파트의 같은 동에 살며 서로의 집에서 잠도 자곤 하는 친자매처럼 지내온 사이였다. 이들은 토요일인 13일 오후 2시 20분쯤 함께 집을 나서 얼마 후 아파트 단지 부근에서 같이 걸어가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주민들에게 목격된 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14일 새벽 가족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오늘이 휴일이니 좀 더 기다려보자. 설마 월요일 학교 가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가족들의 우려대로 월요일인 15일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경찰은 그때서야 부랴부랴 상부에 보고했고 이날 오후 1시부터 ‘합동심의위원회’를 여는 등 수사를 개시했다.
대개의 실종 사건이 그렇듯이 양산경찰서 측도 현재로서는 실종 소녀들을 목격한 제보자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이 사건에는 그런 제보가 전혀 없다. 경찰 관계자는 “보통 실종 사건이 일어나면 목격자 제보가 하루에도 수십 통이 날아드는데 현재 이 사건은 하루 2~3건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도 모두 목격자의 기억 착각이거나 신빙성이 없는 제보들에 불과하다”며 어려움을 표하고 있다.
현재 경찰이 확인한 실종 소녀들의 마지막 모습은 13일 오후 2시 20분경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친구에 의해 목격된 제보가 유일하다. 은영 양과 동은 양이 아파트 인근 정류장 쪽에서 아파트단지 내 슈퍼마켓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이 그것. 즉 당시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들은 오후 1시경 동은 양의 집을 같이 나섰고, 1시반경 은영 양의 오빠에 의해 아파트 단지 상가 주변에서 발견됐다. 또한 약 50분 쯤 후에 아파트 단지 쪽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발견된 것이다. 모두가 아파트 주변에서 발견된 것이다.
실종 소녀들의 행방이 열흘이 넘도록 묘연해지자 비난의 표적은 경찰 측에 쏠리고 있다. 기자가 현지를 방문한 23~25일경에도 경찰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기자에게도 예민한 반응을 나타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보통 실종 사건의 경우 14세 이상과 미만을 구분하여 대처하는데 14세 이상일 경우 가출이 가능한 나이라고 판단, 범죄에 연루된 실종이 아닌 단순 가출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보통 14세 이상 청소년의 실종은 가출이 대부분이었고 평소 강력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는 평화로운 이곳 분위기상 자칫 실종으로 보고 일을 크게 벌였다가 나중에 단순 가출로 판명되었을 때 좁은 지역 사회에서 학생 개인과 가족이 처하게 될 난처한 상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때마침 소녀들이 실종된 시점인 13~14일은 ‘읍민의 날’ 축제가 열리고 있어 마을 전체가 들뜬 분위기였다는 점도 단순 가출 가능성에 한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그래서 14일 새벽 가족들의 최초 신고 때도 ‘축제 행사로 아이들이 들뜬 분위기에 휩쓸려 귀가가 늦어지는 것일 수도 있으니 일단 집에 돌아가서 기다려 보라. 밖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순찰해 보겠다’고 권유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녀들이 하루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이 14일 오전 11시 경 다시 사진을 가져와 신고했을 때에도 “내일이 월요일이니까 학교도 가야하는데 설마 그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느냐”고 했다는 데 대해서는 경찰 측도 “안일한 대처였음을 인정한다”고 시인했다.
현재 현지에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이 투입되어 실종 소녀를 찾기 위한 총력전이 전개 중이다. 제작된 전단지만 3만 매가 넘고 항공 살포용 전단지도 인근 산야와 부산, 울산까지 헬기를 동원하여 뿌려지고 있다. 전단지와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시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바로 실종 사건을 알리는 팝업창이 뜨며 지방 선거를 맞아 유세에 한창인 후보 차량에도 대형 전단지가 붙어 있는 등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열흘이 지나도록 실낱 같은 단서 하나 찾을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평소 조용했던 지역의 민심은 날로 흉흉해지고 있다.
처음 사건 접수 시 가출 가능성 쪽에 더 무게를 두었던 경찰 측 입장과 달리 가족들은 “전혀 가출할 이유가 없는 아이들”이라며 사고 가능성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떨치지 못했다. 동은 양의 경우 학교생활이 모범적이었고 친구 관계도 원만했다는 것이 가족과 학교 측의 일치된 견해다. 은영 양의 경우도 활달하거나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교우 관계나 학교생활 가정생활에 특별한 문제점이 없었다는 것이 학교와 가족 측의 공통된 입장이다.
기자는 현지 취재 과정에서 은영 양의 친구를 통해 “언뜻 은영이가 가출에 대한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는 제보를 접했지만 학교 측은 “더 이상 아이들이 수사 과정에 개입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고충을 이해해 달라”며 직접적 접촉에 난색을 표했다.
현재 경찰이 추정하는 가능성은 세 가지다. 사건 사고 연루, 납치, 가출의 경우가 그것. 경찰은 최악의 상황까지도 대비해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워낙 단서가 없어 난감해 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주변은 야산이 인접해 있는 개발지역으로 경찰은 지난 열흘간 거의 주변 지역을 이 잡듯이 수색했다. 이에 대해서는 실종자 가족들도 인정할 정도. 하지만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자 경찰 내부에서는 한숨만 쉬고 있는 실정이다.
가족들은 “우리도 사고가 아니라 가출이길 바라고 있다”라며 “하지만 두 아이들은 휴대폰도 집에 두고 나갔고, 집에 있는 돈도 한 푼 가져가지 않았다. 가출이 목적이라면 이럴 순 없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남 양산=최윤지 프리랜서 woxl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