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만 취하면 부하들 더듬고 만지고…
군 수사 당국은 군이 최근 군내 성추행 근절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6군단 헌병대에 따르면 이 엽기 중대장은 류 아무개 소령(40)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류 소령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잘못했다”고 반성하면서도 “성추행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한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연 류 소령의 주장대로 이번 사건은 ‘단순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일까, 아니면 곪을 대로 곪은 일부 군의 ‘성 군기’가 철조망 밖으로 터져나온 것일까.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해당 군관계자를 통해 전말을 들어 보았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곳은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육군 6군단 직할 공병대 ○○중대. 군 관계자에 따르면 류 소령은 작년 9월 이 부대에 중대장으로 부임했으며 그로부터 3개월 뒤인 지난해 말부터 ‘부적절한 행각’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24일 헌병대는 류 소령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부대 회식 자리나 자신의 집무실, 내무실 등에서 부하 병사 11명, 부사관 9명 등 20여 명을 60여 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건의 내용을 살펴보면 류 소령은 처음에 중대원들과 친밀도를 높인다며 신체 곳곳을 더듬기 시작하다 나중에는 엉덩이와 허벅지 등을 쓰다듬었다. 몇몇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성기를 만지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류 소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술을 마신 뒤 부하장병의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등 점점 추행의 강도를 높여갔다고 한다.
류 소령의 이 같은 추태를 참다못한 사병들은 이를 부대 내 간부에게 하소연했고 급기야 지난 5월 이 사실을 알게 된 행정보급관(원사)이 류 소령에게 “중대장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사병들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이에 류 소령은 사병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까지 했던 것으로 헌병대 조사 결과 밝혀졌다. 하지만 류 소령의 추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는 것이 피해 사병들의 주장이다.
헌병대 관계자는 “류 소령이 평소에는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술에 취하는 날이면 자주 그런 일(성추행)이 반복됐던 것으로 조사됐다”며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물증이 없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피해자라고 나선 사병들의 증언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으로 미루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군 안팎에선 몇 가지 의문점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은 ‘류 소령이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점이다. 과연 그는 ‘동성취향자’일까. 만약 그렇다면 보수적인 군 조직에서 어떻게 소령까지 진급할 수 있었을까. 또 다른 의문은 한두 달도 아니고 무려 7개월 동안이나 이 같은 성추행이 이어졌는데 어째서 그동안 ‘조용했을까’ 하는 점이다. 혹시 그 사이 이 부대의 휴가자나 외박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 사실을 폭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먼저 류 소령의 성추행 동기에 대한 부분. 이와 관련해 헌병대 관계자는 류 소령이 이전에 근무했던 부대에서의 행적에 대해서도 조사를 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점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그가 애초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인물일 가능성이 낮다는 이야기다. 류 소령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류 소령을 잘 안다는 6군단의 한 관계자는 “류 소령이 만약 그런 행태를 전부터 저질러 왔다면 아마 소령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군복을 벗었을 것”이라며 “이전 부대에서 근무평가도 좋았기 때문에 ○○중대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그의 행동은 정도가 지나치긴 했지만 동성애로 인한 성추행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는 가정도 원만한 편이다. 그동안 부대 내 관사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류 소령에게는 일곱 살짜리 딸도 있다”고 덧붙였다.
류 소령 역시 헌병대 조사에서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다. 우리 부대가 다른 부대와 접촉도 거의 없고 떨어져 있는 데다 부하들과 빨리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했다”며 “평소 안 그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술을 마시면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류 소령의 행동을 단순히 친근감을 전해주기 위한 행위나 음주 뒤의 주사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다수의 부하를 상대로 하는 유사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보다 정밀하고 철저한 사례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다음은 장기간 광범위하게 벌어진 성추행 행각이 왜 그동안 노출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 대부분의 군 관계자들은 “요즘 군대는 유리상자에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예전처럼 부하에게 함부로 대하다가는 큰일 난다”고 입을 모은다. 조금이라도 불합리하거나 부당하다 싶으면 인터넷으로 이를 알려 일파만파로 번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여 명의 부하를 무려 60여 차례나 성추행해온 중대장이 있다면 문제가 터져도 벌써 터졌어야 ‘정상’이 아닐까.
6군단 정훈공보부 관계자는 “피해자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 류 소령의 성추행은 분명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류 소령이 취중에 주로 성추행을 했을 뿐 평소에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 사병들은 그동안 상관의 나쁜 술버릇 정도로 이해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군 조직의 폐쇄성 때문에 류 소령의 성추행 행각이 그간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만에 하나 류 소령 등이 추문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 사실은 없는지도 함께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류 소령은 계급을 악용해 성적 욕구를 채워왔던 걸까, 아니면 또 다른 곡절이 있었던 걸까.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