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발목 잡힌 ‘착한 차’…한국만 역주행
녹색연합 등 환경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지난해 6월 저탄소차협력금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왼쪽 원안 사진은 2013년 서울모터쇼. 연합뉴스
다시 말해 탄소배출량이 적은 차는 연비가 좋은 차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 회사들은 왜 탄소배출량을 줄이려고 할까. 탄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찍혀 있다. 그래서 전세계에서는 탄소배출권이란 것까지 만들어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이려 하고 있다. 그중 자동차가 내뿜는 탄소량은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이 OECD국가 중 7위에 해당한다.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 돈을 주고 탄소배출권을 사와야 한다.
결국 이런 배경으로 자동차 업체들은 탄소 배출을 줄인 연비 좋은 차를 만들고 있다. 소비자들은 연비 좋은 차를 타게 돼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자동차 회사들은 지구를 살리게 되는, 모두가 즐거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흐름에 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2015년 1월은 원래 저탄소차 협력금제를 시행하기로 한 해였다. 저탄소차 협력금제란 한마디로 소비자가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차를 사게 도와주는 법안이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부담금을 부과하는 반면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자동차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 제도 도입을 담은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은 관계부처간 의견을 종합해 여당이 발의했고 2013년 3월 국회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2015년 1월 1일부터 제도를 시행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 자동차 업계의 반발과 부처간 이견으로 시행을 미루면서 법을 정하고도 시행하지 못하는 입법부작위 사태를 겪었다. 입법부작위란 입법부를 통해 신규 또는 개정된 법안을 행정부에서 시행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왜 이 제도를 반대했을까. 이 제도를 시행할 경우 유럽·일본 등의 자동차업체들은 상대적인 혜택을 보는 반면, 국내 자동차업계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재계가 강하게 반발해왔다. 국내 자동차 산업 구조가 중대형차 중심인 만큼 자동차 산업에 부정적 영향이 있고 국내 중대형차 시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논리다. 사실 2009년 7월 도입이 확정된 저탄소차협력금제의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초 2013년 7월 시행 예정이었고 환경부는 이를 위해 예산까지 편성했다. 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통상압력과 국내 완성차업계의 반대로 지난해 초 시행시기를 2015년 1월로 연기했다.
앞서 살펴봤듯 이 제도가 연기된 것은 자동차 업체들의 반발이 가장 컸다. 대형차 위주의 국내 자동차 업체와 대형차를 주로 파는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만약 이 법이 시행됐으면 현대차의 대형차량인 에쿠스의 경우 약 700만 원의 부담금을 더 내야 구입이 가능했을 것이고 K5나 쏘나타 하이브리드차의 경우는 반대로 약 5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았을 것이다. 지난해 가을 저탄소차 협력금제 시행 연기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외 완성차업계의 희비는 엇갈렸다. “독일·일본차 업계에 유리하다”며 반발해온 현대·기아차, 쌍용차, 한국지엠 등은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반면 국내 완성차업계 중 유일하게 저탄소차 협력금제에 긍정적인 입장이던 르노삼성자동차는 아쉬운 표정이었다. 하이브리드차 강자인 도요타, 뛰어난 연비가 강점인 푸조 등은 기대를 접어야 할 상황이다.
결국 우리나라 정부는 고연비 차량을 개발한 업체들의 발목은 잡고 그렇지 못한 업체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환경부는 2020년까지 자동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1㎞당 97g(연비 기준 리터당 24.3㎞)으로 정했다. 다음 정권의 일로 미뤄둔 것이다. 언제까지 세계적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까. 소비자들이 연비 좋은 수입차를 더 많이 사도록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