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설 특집 기나긴 연휴 솔로들을 위한 영화(4)
“12명을 위한 저녁 식사를 예약하고 싶다.”
이 얘기의 뜻이 무엇일까. 존 윅(키아누 리브스 분)은 자신의 집을 기습한 괴한 12명과 1 대 12의 싸움을 벌이고 승리한 뒤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느닷없이 저녁 식사를 예약한다.
호텔에 투숙 죽인 존 윅은 한 여성 킬러의 기습을 받는다. 양쪽 모두 실력파 킬러인 터라 치열한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존 윅이 여성 킬러를 제압한다. 그리곤 프론트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는다. 프론트에선 소음에 대한 불만이 접수됐다며 정숙을 요구한다. 이에 존 윅이 “초대 받지 않는 손님이 와서 그렇다”고 답하자 프론트에서 되묻는다. 이번에도 느닷없다. “그럼 무슨 도움이 필요하신사요? 뭐 저녁 예약이라던가.”
영화 <존 윅>은 킬러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다. 줄거리는 다소 뻔하다. 은퇴한 킬러가 우연한 계기로 다시 킬러들의 세계로 돌아가 자신의 평온한 일상을 깬 조직과의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것. 물론 존 윅이 승리한다. 이미 수많은 영화가 다뤄온 스토리 라인인데다 킬러들의 세계 역시 이젠 다소 지겨울 정도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기존의 킬러 영화와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킬러들의 세계를 보다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다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저녁 예약’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에서 ‘저녁 예약’은 시체 처리를 의미한다. 시체 처리 및 현장 정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시체 처리 업소가 있고 거기 전화를 걸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부탁하는 그들만의 은어가 바로 ‘저녁 예약’이다. 존 윅이 12명의 저녁을 예약하는 전화를 걸자 곧이어 전문가들이 그의 집을 방문한다. 얼핏 보면 청소 업체 직원들 같다. 각종 청소 장비를 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선 시체를 치우고 피자국과 총탄 등 시체가 남긴 모든 흔적을 깔끔하게 처리한다. 물론 현장에서 가져온 시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까지가 그들의 업무다. 킬러들의 세계에선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바로 그들의 작업 현장을 정리해주는 이들일 테니,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저녁 예약’으로 표현되는 시체 처리 업소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렇게 영화 <존 윅>은 구체적으로 킬러들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 중심은 콘티넨탈 호텔이다. 이곳은 킬러들의 숙소이자 휴식처다. 킬러들은 각자의 임무에 따라 서로에게 적이 될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경쟁자다. 따라서 누군가를 죽이려는 그들은 또 누군가의 표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콘티넨탈 호텔에선 안심할 수 있다. 이 호텔을 사용할 수 있는 킬러는 모두 ‘콘티넨탈 회원’들이며 그들은 ‘콘티넨탈의 규칙’을 지켜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이 구역에서는 어떤 일도 하면 안 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무거운 처벌이 따른다’는 것. 결국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킬러들일지라도 콘티넨탈 호텔에선 ‘일’을 하면 안된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킬러들이 옆방에 투숙하고 있을지라도 호텔 복도나 로비에서 우연히 만날 경우에도 편하게 안부를 묻고 지나쳐야 한다. 물론 호텔에서 나서는 순간 다시 총칼을 겨눌지라도.
콘티넨탈 호텔 지하에는 그들만의 클럽이 있다. 호텔 지하 세탁실과 기관실을 지나 가장 깊숙한 복도 끝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휘황 찬란한 클럽이 있다. 이곳 역시 킬러들의 안전지대로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면 안 되는 것은 물론, 업무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 역시 ‘일’로 간주되기 때문에 금지되고 있다.
또한 콘티넨탈 호텔에선 모든 결제가 금화로 거래된다. 이 금화 역시 콘티넨탈 회원인 킬러들만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그들만의 화폐다.
다시 말해 콘티넨탈 호텔에선 저녁 예약을 하면 안된다. 킬러들의 안식처인 콘티넨탈 호텔에서 저녁 예약, 다시 말해 시체 치울 ‘일’을 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영화에선 그 ‘콘티넨탈의 규칙’이 깨지는 장면도 나오는데 그 결과는 역시나 ‘무거운 처벌’이다.
영화 <존 윅>을 두고 많은 군내 네티즌들이 한국 영화 <아저씨>를 얘기한다. 복수에 나선 전직 킬러 존 윅의 행보가 세상을 등진 채 전당포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전직 특수요원 태식이 옆집 소녀의 납치 사건에 분노해 복수에 나선 <아저씨>의 스토리와 꽤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토리 자체는 전혀 독창적이지 않다. 언젠가 본 영화를 다시 보는 느낌, 내지는 예전에 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존 윅>이 자신만의 가치를 확고하게 갖는 영화가 된 것은 콘티넨탈 호텔을 중심으로 킬러들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는 부분이다. 실제 킬러들의 세계가 그러한지 알 순 없지만 아무래도 제작진이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머나먼 우주 공간에 그런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중간계라는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영화 <존 윅>은 뉴욕이라는 대도시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킬러들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런 기발한 상상의 세계는 영화를 보는 데 큰 즐거움이 되곤 한다.
또한 총을 중심으로 한 액션이 매우 스타일리시하게 빠졌다는 부분도 영화 <존 윅>의 장점이다. 키아누 리브스의 총을 다루는 액션 솜씨는 과연 명불허전이다.
@ 줄거리
전설적인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 분)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범죄의 세계를 떠난다. 킬러의 세계에서 은퇴한 것. 그렇지만 투병 끝에 부인이 사망하면서 존 윅은 엄청난 실의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죽음을 예감한 부인이 자신이 사망한 뒤의 존 윅을 걱정해 강아지 선물 배달을 예약해 놓는다. 자신은 떠났지만 존 윅에겐 여전히 무엇이든 누구든 사랑할 것이 필요하다며 강아지로 시작해보라는 메모와 함께. 메모에서도 잠시 언급될 만큼 존 윅은 자동차 마니아이기도 하다. 실의에 빠진 상태에서 강아지와 함께 자동차를 몰고 나와 거칠게 운전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장면이 나올 정도다.
문제는 누군가 그가 아끼는 자동차를 훔치고 강아지를 죽였다. 주유소에서 존 윅의 클래식 자동차를 보고 이를 탐낸 유세프(알피 알렌 분)가 일행과 함께 존 윅의 집에 들어가 무방비 상태의 존 윅을 폭행하고 자동차를 훔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아지 역시 죽인다.
부인이 남긴 강아지를 통해 실의에 빠진 나날에서 일말의 희망을 봤던 존 윅은 죽은 강아지를 묻어준다. 게다가 유일한 삶의 탈출구이던 자동차까지 잃은 그는 유세프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유세프는 존 윅도 잘 알고 있는 마피아 보스 비고(마이클 닉비스트 분)의 아들이다. 결국 유세프에 대한 복수는 비고가 이끄는 마피아 조직과의 한판 대결인 셈이다.
지하실 깊이 묻어 둔 총과 금화 등 킬러 시절 사용하던 물건을 꺼낸 존 윅은 조용히 뉴욕으로 향한다. 그리고 콘티넨탈 호텔로 들어가 체크인을 한다. 다시 전설적인 킬러 존 윅이 돌아온 것이다.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킬러들의 세계, 그들만의 법칙이 궁금하다면 클릭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는 다소 뻔한 스토리의 복수극이다. 총격 액션이 매우 스타일리시하게 잘 빠졌지만 스토리는 흑백 영화시대에도 접해본 적이 있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복수극이다. 킬러라는 소재 역시 이젠 지겨울 정도다. 그렇지만 콘티넨탈 호텔을 중심으로 그려낸 킬러들의 세계와 그들만의 법칙은 매우 신선하다. 영화적인 상상력이 뉴욕 도심의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 것. 이런 영화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에 관심이 있거나, 그렇게 만들어진 그들만의 세계가 궁금한 이들이라면 적극 추천한다. 또한 기본적으로 킬링타임 무비로는 손색이 없는 액션 영화인 터라 ‘2015년 설 특집 기나긴 연휴 솔로들을 위한 영화’로 추천한다. 물론 남성 솔로에게 적극 추천이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2000원
본래 추천 가격은 1000원 정도로 생각했지만 콘티넨탈 호텔을 중심으로 제작진이 만들어낸 새로운 킬러들의 세계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2000원으로 정했다. 이런 영화적인 상상력에 평소 높은 점수를 주는 관객들에겐 적극 추천할 만한 영화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뻔한 복수극이라며 실망할 수도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유세프가 존 윅의 자동차를 훔치고 강아지를 살해하기까지 초반 15분가량이 매우 지루하다. 이 포인트를 잘 견뎌야 한다. 존 윅이 첫 저녁예약을 하는 영화 시작 30분 이후에는 영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