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하란대로 했쩌요~”
A 은행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곧바로 CCTV 분석에 들어갔다. CCTV 속에서 경찰이 보게 된 것은 뜻밖에도 대여섯 살나 보이는 한 여자 아이. 이 아이가 VIP실에 들어간 지 불과 1분도 채 안 돼 뭔가를 들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뒤이어 아이가 자신이 들고 나온 ‘물건’을 객장에 앉아있는 한 여성에게 주는 장면도 포착됐다.
경찰은 CCTV 속에 찍힌 여성이 사건 발생 몇 분 전 현금인출기를 사용하는 모습도 확보했다. 당일 거래내역을 조사한 결과 용의자는 은행 인근 지역에 사는 강 아무개 씨(여·33·무직). 강 씨의 거주지를 확인한 경찰은 그의 집 앞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사건 발생 2시간 후 강 씨는 자신의 여섯 살짜리 딸과 귀가하던 중 경찰에 붙잡혔다. 그의 핸드백 속에는 사라진 수표와 상품권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경찰에 연행된 강 씨는 처음엔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은행에는 단지 돈을 뽑으러 갔을 뿐이며 어린 딸이 뭘 집어 가지고 오기에 뭔지 모르고 가방에 집어 넣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뭔지도 모른 채 100장의 수표와 상품권 등을 가방에 집어 넣었다’는 강 씨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했다. 경찰의 추궁 끝에 강 씨는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자신이 딸에게 VIP실 금고에서 돈을 들고 나오게 시켰다는 것.
강 씨가 자신의 어린 딸에게 ‘도둑질’을 시킨 사연은 이렇다. 강 씨는 5년 전부터 남편과 별거 중이었다. 무직자였던 강 씨는 딸을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은행에 들렀다가 VIP실 문 너머로 금고 속 수표 다발이 보이자 딸에게 “저기 보이는 것 좀 들고 나와라”고 시켰다는 것. 경찰은 강 씨가 전과가 없다는 점, 현금 인출 내역이 있다는 점 등을 미뤄 ‘우발적인 범행’으로 사건을 종결짓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한편 A 은행 측에서는 사건 발생 후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형 은행에서 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가 아무도 모르게 돈을 집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게 금고를 관리했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