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에쿠치’는 압구정동 상류층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왜? 다른 집 빵과 확실히 다르니까. 소위 ‘명품’ 빵이다. 몇 년 전 테이블 두서너 개로 시작한 이 집은 현재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다.
“○○○패션쇼에서는 ‘에쿠치’ 빵으로 도배를 했다며?” “디자이너 ○○○는 빵값 좀 아낀다고 ‘에쿠치’ 빵을 쓰지 않았다는데 아니 아낄 걸 아껴야지.”
SFAA 쇼가 끝난 후 디자이너마다 홍보를 위한 애프터 파티를 하는데, 파티 참석자들이 귓속말로 하는 얘기다. 참고로 SFAA는 봄·가을로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가장 권위 있는 패션쇼로, SFAA 회원이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디자이너들 약 30여 명이 참가하는 패션쇼다.
▲ 지난 3월 열린 SFAA에서 한 디자이너의 작품을 모델들이 선보이고 있다.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그런데 빵만큼은 명품(?)과 짝퉁(?)이 확실히 구분된다. 프라다를 아무리 흉내내도 프라다 짝퉁은 표시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쿠치 짝퉁도 에쿠치와는 다르다. 그래서 일부 디자이너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에쿠치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품=명품=에쿠치’라는 등식으로 연결되는 할로 이펙트를 최대한 거두기 위해서다. 빵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럭셔리’를 구입하는 것이다. 그래야 상류층다우니까. 덩달아 부대찌개·김치찌개만 먹던 패션기자들도 상류층인 척해야 한다. 평상시 집에서도 에쿠치 빵만 먹었던 것처럼.
패션 전문지
“웃겨요. 원래 애프터 파티는 바잉(buying) 행사이거든요. 쇼가 끝난 후 디자이너와 바이어가 직접 만나 거래를 성사하는 치열한 상거래 행사죠. 때문에 애프터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수를 보면 어느 디자이너가 뜨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외국의 패션쇼죠. 우리나라 패션쇼는 ‘바잉’이 없어요. ‘바잉’이 없는 패션쇼. 마치 앙꼬 없는 찐빵 같은 거죠.
그런데도 1회당 최소 1억∼2억원씩 들여서 패션쇼를 합니다. 왜냐구요. 순전히 ‘프레스’(보도)용이에요. 애초 바이어는 기대도 하지 않아요. 그저 기자들과 연예인, 일부 상류층 고객들만을 초청해 디자이너의 명성을 확인하는 장소죠. 디자이너의 우아한 미소와 세련된 화술, 그에 화답해야 하는 초청자들의 상투적인 찬사, 공허한 대화와 화려한 모차르트 피아노 연주곡, 붉은 와인과 호텔 로고가 선명한 케이터링 음식, 그리고 에쿠치 빵….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신문이나 잡지에 사진 한 컷이라도 나기 위해 일부러 튀는 의상을 만든다는 것이에요. 바잉을 전제로 하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의상들 말이에요. 비록 입을 수는 없지만 튀어야만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앵글에 잡히거든요. 이 사진을 다음 시즌까지 6개월 내내 우려먹습니다.”
이채영 기자. 어디 비정상이 패션계뿐입니까. (주)서령창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