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건물 담벼락. 팬들이 염원을 담아 붙인 쪽지가 가득하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본격적으로 팬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팬덤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다. 남진, 나훈아 등 최정상의 가수들은 당시에도 수만 명의 팬클럽을 거느렸다. 전국에 지사를 설치하고, 월보를 발행하는 등 제법 조직력을 갖췄다. 당시에도 팬클럽끼리의 경쟁은 치열했다. 라디오 방송의 희망곡 엽서를 경쟁적으로 보내 ‘오빠’를 향한 사랑을 과시하거나, 공연장에서 고함소리로 경쟁을 벌여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기까지 했다.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가 열린 1990년대 들어서는 팬클럽의 경쟁은 더 험악해졌다. 가수들의 합동콘서트가 열리면 전날 새벽부터 나와 줄을 섰고,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자리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소녀팬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는 일도 잦았다. 매번 합동콘서트에서는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났다. 작게는 말다툼에서부터 팬클럽끼리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1998년 연말 골든디스크시상식을 앞두고 250명의 그룹 ‘젝스키스’ 팬과 ‘H.O.T’ 팬들이 단체로 벌인 몸싸움은 팬클럽 ‘흑역사’로 남아있다.
오빠들을 사수하기 위한 ‘안티’ 활동이 문제가 된 적도 있다. 같은 소속사의 걸그룹이 무대에 나오면 “꺼져라”는 등의 구호를 합심해 외치는가 하면, 열애설이 터지면 해당 여자 연예인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는 일도 있었다. 1999년에는 그룹 ‘베이비복스’의 멤버 간미연이 면도칼과 함께 피 묻은 협박편지를 받아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범인은 간미연과 열애설이 났던 문희준의 팬으로 밝혀졌다.
풍선 색깔로 싸움을 벌이는 일도 잦았다. 가수에게 ‘우리가 이만큼 왔다’는 것을 알리는 방법으로 풍선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색깔이 겹치기라도 하면 팬클럽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색깔 경쟁에서 밀린 팬클럽은 풍선을 대신할 참신한 응원도구를 개발하기도 한다. 가수 비의 팬들은 대문자 ‘R’ 모양의 야광봉을 만들었고, 걸그룹 ‘원더걸스’의 팬들은 일명 ‘여왕봉’을 흔든다.
‘팬들의 전쟁’은 온라인에서도 치열하다. 특히 검색어, 음원차트 순위는 가장 예민한 부분 중 하나. 얼마 전에는 ‘미쓰에이’와 ‘엑소’가 신곡 발표일자가 겹쳐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스에이의 멤버 수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미쓰에이가 1위에 오른 캡처화면을 올리자 엑소 팬들이 수지 인스타그램 계정에 엑소를 응원하는 글로 응수했던 것. 팬들의 싸움은 블로그, 팬클럽 사이트로 번지면서 “팬질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수지가 예민한 부분을 긁었다”는 등 설전을 벌였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