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박근혜대표, 김덕룡 원내대표, 박세일 정책위의장 | ||
박근혜(당 대표)-김덕룡(원내대표)-박세일(정책위의장) 등 삼두 지도체제를 탄생시킨 한나라당 ‘1·11 당직인사’에 대한 우려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걱정하는 소리가 많아 보인다.
차기 대선에서 기필코 정권을 ‘회수’해야 하는 한나라당과 복잡한 당내 역학구조를 반영해야 하는 박 대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어정쩡한 ‘2박1김’의 삼두 체제가 형성됐다는 지적이다. 이런 구조는 누구 하나가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다.
무엇보다 이념과 철학, 개성이 강한 세 사람의 집권전략이 다르다. 박 대표는 이번 인사를 계기로 ‘박근혜 대세론’ 확산시키겠다는 셈법이지만, 김 원내대표는 ‘킹 메이커’ 역할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태세다. 박 대표에 의해 발탁은 됐지만 박 의장이 박 대표와 보폭을 맞출지 여부도 미지수다.
박 의장은 박 대표든, 이명박 서울시장이든, 손학규 경기지사든 관계없이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또 당의 이념과 노선 및 이해관계를 바라보는 입장이 딴판인 셈이다.
그러면 당직인사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박 대표는 지난해 말 4대 법안을 놓고 갈등을 빚어온 김덕룡 원내대표를 교체하지 않은 대신 박세일 카드를 선택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의원 투표로 선출된 김 대표의 인사권은 박 대표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정기국회와 임시국회가 끝나자 마자 김 대표 문책론이 거셌고, 영남 보수파를 중심으로 퇴진 운동이 본격화될 조짐이 있었던 만큼 박 대표가 마음만 먹었으면 김 대표의 낙마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김 대표의 손을 들어주는 대신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이한구 정책위의장을 물리고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의 박세일 소장을 정책위의장에 내정했다.
박 대표 한 측근은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김 원내대표를 내칠 경우 곧장 당내 반발에 직면할 수 있고, 당의 일대 혁신과 보수 회귀를 경계하는 소장파를 달래기 위해서는 보수성향의 이한구 의장을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당내 기반이 열악한 박 대표로서는 이 같은 역학구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인사는 박세일 의원의 발탁에 대해 “박 대표가 4대 법안 처리과정에서 강경보수로 비쳐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당을 ‘합리적 보수’로 바꿔야 하는 박 대표로서는 이념개조론을 주장한 박 의원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또 이번 당직인사와 곧 있을 당명개정, 당쇄신안을 이용해 ‘차기 지도자’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야 하는 박 대표로서는 여의도연구소를 통해 중장기 국정과제를 발굴해온 박 의원을 곁에 두고 정책 컨텐츠를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박 대표 생각대로 향후 구도가 전개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 원내대표가 강경보수 입장을 보여온 박 대표와 각을 세우며 ‘킹 메이커’로서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최근 박 대표 비판세력으로 노선을 정한 소장파뿐 아니라 김문수 이재오 홍준표 의원 등의 ‘국가발전연구회’와 연대를 모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10여 일 간의 아프리카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우리의 길은 어디까지나 ‘개혁적 중도 보수’”라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더라도 절차와 방법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말한 ‘하나의 목표’는 박 대표 집권론이 아니라 한나라당 집권론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 원내대표측 한 인사는 “김 대표가 해외로 떠나기 전 ‘해현경장(解弦更張)’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에 주목해 달라”고 강조했다. ‘거문고 줄을 고쳐 팽팽하게 맨다’는 뜻의 ‘해현경장’은 중국 한나라 동중서가 ‘개혁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한무제에게한 말이다.
이 관계자는 “이를 두고 일각에서 김 대표가 사퇴할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사실은 그 정반대”라며 “김 대표는 앞으로 한나라당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며 반대파들과의 사상전도 불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5선에다 예순을 넘은 김 대표가 개인욕심을 부리지 않고 한나라당 집권을 위해 발벗고 나서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김 대표가 일단 ‘킹 메이커’ 역할을 하겠지만 여차하면 직접 대권 후보경쟁에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 대표가 회심의 카드로 선택한 박 의장의 향후 행보도 주목된다. 박 의장은 지난해 박 대표가 정수장학회 문제로 곤욕을 치를 때 “유신의 늪을 벗어나고 싶으면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던져라”라고 직격탄을 날리 정도로 소신이 뚜렷하다.
특히 박 의장은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은 ‘사상전’에서 졌기 때문”이라며 “다음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수립하는 게 그 출발이고, 그걸 기초로 해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문제는 박 의장이 생각하는 이념정당과 박 대표가 염두에 두는 당 이념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박 의장은 박 대표의 정책위의장직 제의를 수 차례 거부했다는 후문이다. 박 의장과 가까운 한 의원은 “박 의장은 박 대표의 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반신반의하는 것 같다”며 “철학이 분명한 박 의장이 박 대표와 생각이 다르다고 판단되면 박 대표를 바꾸려고 할 것이고, 황소고집인 박 대표와 파열음이 일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무성 사무총장도 “박 대표가 바뀌어야 집권할 수 있다”고 박 대표 변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박 의장은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사람의 독주가 아니라 경쟁을 통해 승자가 결정돼야 하며 자신은 공정한 관리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는 소장 전문가 그룹을 중심으로 ‘박세일 사단’이 형성돼 있어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당 한 중진의원은 “문제의 핵심은 박 대표의 치마폭 넓이”라며 “박 대표가 김 대표와 박 의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이면 삼두체제가 연착륙에 성공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극심한 내홍국면에 빠져 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영욱 언론인